한국문학의 거장 조정래가 아닌 단지 상실과 풍경이란 단어 때문에 선택한 책이다. <상실의 풍경>(해냄, 2011)속 10편의 단편을 통해 197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과 마주한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아니 존재했더라도 알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책은 소설을 너머 1970년대 사회를 담고 있다. 10편의 소설은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함께 군생활을 하는 군인 이야기(누명, 빙판, 타이거 메이저)를 통해 한국 군인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더불어 그 안에서 미군을 옹호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탐욕도 마주할 수 있었다. 영어를 배우고 어쩜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살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참한 상황, 바로 그 시대 우리의 모습이었다.
6.25와 월남전을 온 몸으로 느끼고 힘겹게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어떤 전설, 거부 반응, 청산댁)를 비롯한 1970년 시민들(상실의 풍경)의 삶은 가슴이 아리고 쓰리다. 40년 전 그들의 삶은 지금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아 서글프다. 여전하게 대치한 남과 북, 미군, 월남전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1970년은 누구나 큰 도시나 서울로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고생하는 부모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목을 잡는 이념이 있었다. 나라의 부름으로 군대에 갔고 전쟁에 참전했지만 남은 건 싸늘한 죽음뿐이니, 남겨진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할까. 과연 그 시절에만 해당되는 일인가?
‘사람들은 바삐 걸어가고 차들은 거침없이 달리고, 번잡함과 분주함 속에서 태연한 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태연함은 세상의 외피였다. 그 외피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신음하고 외로워하고 있는 것이랴. 그동안 자신과 같은 피해를 받고 홀로 고통스러워하다가 끝내는 체념해야 했던 젊은이들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런 아픔은 전혀 표면화되지 않은 채 세상은 무사태평하게 잘도 돌아간다.’ p.197~ 198 <어떤 전설> 중에서
작가는 1970년 당시, 이 소설들을 쓰면서 40년 후엔 달라졌을 꺼라 믿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은 누군가의 삶일 터, 그 시절을 지나 다시 이 소설과 마주한 그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상실로 인한 슬픔은 여전하게 차오르고 삶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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