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파문의 핵이었던 ‘행복한 눈물’(로이 리히텐슈타인 作),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로비 작품 ‘학동마을’(최욱경 作), 그리고 오리온 비자금 의혹과 관련된 ‘플라워’(앤디 워홀 作)까지 모두 그와 얽혀 있다. 이들 사건 외에도 그의 이름은 ‘검은 돈(비자금)’ 이슈만 발생했다 하면 단골로 오르내린다. “재벌 소장품 대부분을 그가 사줬고, 10~50배씩 올랐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과연 사실일까? 그가 입을 열었다. 언론의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갤러리서미와 당신 이름은 안 빠진다.
-나도 참 난감하다. 일일이 변명하긴 싫다. 참 공교롭다. 그러나 이건 알아달라. 1988년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현 이스트)에 화랑을 열었는데 한국작품이 워낙 비싼 데다 구하기도 힘들어 나는 남들이 눈길을 주지않던 해외작품을 소개했다. 그 작품들이 지난 20년간 많이 올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측면이 있다.
▶그동안 당신이 권했던 작품들, 참 많이도 올랐다. 2억원짜리가 100억대가 됐다고 알려졌는데.
-그건 극단적인 경우다. 많이 오른 건 사실이나, 별로 안 오른 것도 있다. 또 지난 20년간 현대미술품 시장이 가파른 상향곡선을 그렸던 영향도 크다. 비근한 예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다. 리히터 작품은 2억원이었던 게 100억원대니까. 또 마크 로스코, 알렉산더 칼더, 도날드 저드, 신디 셔먼도 그렇다. 이들 작품은 5~30배쯤 올랐다.
▶오리온 비자금 사건은 어떻게 된건가.
-검찰에 불려가 말한 그대로다. 문제의 40억원은 시행업자인 박모 씨 돈이다.
▶당신이 오리온과 입을 맞추고 있다는데.
-수사로 밝혀질 것 아닌가. 난 자신있다.
▶그렇다면 ‘행복한 눈물’은 어찌 됐나. 한국에 있나.
-1992년인가? 세계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래리 가고시안(가고시안갤러리 대표)의 뉴욕 집을 찾았는데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식탁 옆에 걸려 있었다. 너무 맘에 들어 값을 물었더니 80만달러라고 했다. ‘헉’ 하고 물러섰다. 리히텐슈타인의 같은 시리즈 중 최고에 해당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이듬해엔 120만달러, 그 다음엔 200만, 400만, 800만달러까지 오르더라. 그래서 200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거의 비슷한 작품이 나왔길래 680만달러에 지르고 말았다. 그리곤 삼성에 팔려고 2년 넘게 기다렸는데 홍라희 관장께선 마음에 들어했지만 이재용 사장이 만화 같은 그림을 700만달러나 주고 왜 사느냐고 반대해 결국 못 팔았다. 이후 비자금 파문에 휘말리는 바람에 미국 측에 도로 팔아버렸다.
▶얼마에 되팔았나.
-밝힐 순 없으나 약 두 배쯤? 금융비용은 건졌다.
▶당신은 재벌 안주인과 유착돼 있다는데.
-삼성 리움의 홍라희 관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한솔그룹 이인희 전 고문, 오리온 그룹 이화경 사장 등등 많은 분들이 고객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로 만날 뿐이다. 만나는 시간도 10분,20분에 불과하다. 내가 집사처럼 집안 일 챙겨주고, 김치까지 담가주러 다닌다는데 말도 안 된다. 그분들, 김치 담그는 일에 관심 둘 시간이 없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보면 그런 말 안할 거다.
▶재벌가의 작품 구입, 당신이 독식한다고 들었다. 서미는 미술품을 ‘자금세탁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인식이 꽤 많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대단한 기업들인데 나하고만 거래하겠나? 예전엔 내가 상당부분 소개했지만 요즘은 글로벌 시대 아닌가? 해외를 통한 작품구입이 크게 늘었다. 그리고 재벌들이 좋은 뜻으로, 미술관이나 공공장소에 설치하려고 산 작품들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건 옳지 않다. 좋은 작품을 국내에 들여오는 건 우리 국력이 그만큼 강해졌음을 방증한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니 우리도 현대미술의 핵심작품은 보유해야 한다고 본다. 게다가 요즘은 현금거래도 없다. 현금 좀 만져봤음 좋겠다.
▶이번에 가회동 화랑을 대대적으로 고치고, 전시(조안나 바스콘셀로스 전)를 개막했는데 당신 방은 어딘가? 재계 안주인들을 만나는 조용한 내실이 있을텐데.
-없다. 따로 내실을 만들 스페이스가 없다. 여기 이렇게, 2층 전시장 끝자락의 넓은 테이블이 내 자리다. 갑갑한 게 싫어 문도 안 달았다. 전에도 문달린 방을 따로 둔 적이 없다. 물론 살림집(한옥)이 화랑과 붙어 있어 집에서도 사람들을 더러 만난다. 그치만 집에도 내실은 없다. 유리로 확 트인 그냥 살림집이다. 난 내실 같은 거 싫어하는 체질이다. 확 트인 게 좋다.
▶‘향후 뜰 만한 작품’을 찍어내는 안목, 당신이 한국 최고라 한다.
-아, 그렇게들 말하는 모양인데 난 한국 최고가 아니라 ‘세계에서 셋째 안’에 드는데? 하하. 언젠가 크리스티 경매의 에돌먼 회장을 만났을 때 “아, 저 작품 좋네. 나 할래요”했더니 “송원, 네가 찍으면 영락 없더라. 당신 눈 세계에서 셋째 안에 들어”라고 했다.
▶그 좋은 눈(眼)으로 우리 미술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 좀 하질 그랬나.
-그런가? 남들이 잘 몰라 그렇지 나도 좋은 일 많이 했다. 청담동에 화랑 문 열었을 때부터 리히터, 저드, 톰블리, 댄 플래빈, 에드 루샤 등등 정말이지 많은 현대미술, 특히 미니멀리즘 작가들을 전시를 통해 소개했다. 단 사교성이 부족해선지, 아니면 미술에 꽂히면 주위 사람들(화랑주 등)과 소통할 생각을 안해선지 질시를 많이 받았다. 일정부분 내 책임 인정하지만 좋은 작품을 남 보다 먼저 소개한 공로는 인정받고 싶다. 지금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중 내가 들여온 게 많다. 이제는 그 가격으론 만져볼 수도 없다.
▶아트딜러 되기 전 요리 및 제빵제과에 심취했다던데.
-정신여중고를 나와 이화여대 사회체육과를 다녔다. 테니스 유단자(?)다. 내 팔뚝 장난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요리를 배워 주위 친지들에게 (주로 집에서) 가르쳤는데 맛도 맛이지만 스타일리시한 상차림 때문에 반응이 꽤 좋았다. 한 때 재계의 혼례 디렉팅, 이바지음식도 조언했다. 그게 와전돼 ‘파출부까지 뛴다’고 소문이 난 것 같다.
▶당신 배짱은 알아주더라. 남다른 안목과 적중력에, 두둑한 배짱까지….
-그 바람에 화랑 경영에 늘 허덕인다. 경영자로선 낙제점이다. 눈 앞의 작품이 좋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일단 지르고 보니 판매까지 시간이 소요돼 금융비용이 많이 든다. 해외경매사로부터도 ‘대책없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좀 자제해야 하는데….
▶재벌가 및 부유층의 ‘미술품 컬렉션’을 자문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집 치장, 가구) 분야에 더 꽂혀 지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난 집 꾸미고, 살림 사는 게 취미다. 일 보다 살림이 우선일 때가 많다. 화랑경영자로선 사실 아마추어 수준이다. 얼마 전까지도 화랑 2층에 살았다. 요즘은 화랑 뒤편에 한옥을 컨템포러리하게 고쳐 살고 있는데 국내외 언론들이 ‘정말 근사하다’며 취재하겠다고 난리다. 나는 ‘예술품’으로 분류되는 아트퍼니처와 현대도자기, 디자인용품 등도 무척 좋아한다.
▶당신도 재벌가 출신인가? 집안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재벌은 아니고, 평양고보 출신인 아버지께서 삼흥수산이라고 냉동수산업과 염전사업을 크게 하셨다. 시아버지께선 삼화제분이란 회사를 하셨고. 여동생(홍정원 상무)이 LS전선 구태회 명예회장의 며느리다. 동생은 나를 돕고 있다.
▶재벌가에 그림 팔아 연매출이 1000억대를 넘어서고, 아들에게 ‘짐’(체육관)에 수영장까지 딸린 100억짜리 저택을 사줬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나도 그 소문 들었다. 우리 아들집은 20억원짜리 타운하우스를 사서 내부를 말끔하게 고쳤다. 주차장을 수리해 러닝머신(트레드밀) 한 대를 들여놓았더니 그런 말이 돌더라. 1000억대의 화랑 연매출도 그렇다. 결제가 몇년씩 미뤄지던 주요기업의 큰 작품 구입이 확정돼, 한꺼번에 대금이 들어오면 그렇게 확 늘어난다. 고무줄처럼 들쑥날쑥한 게 우리 화랑 매출이다.
▶당신은 사업욕심도 대단하더라. 가회동 화랑 외에 청담동에도 갤러리(서미앤투스)와 스위스 비트라미술관 서울점을 운영하던데.
-모두 건물을 임대해 운영하는 거다. 참 가회동에서 커피숍(‘To Go’)도 운영하고 있다. 가회동에 활기를 돌게 하려고 커피숍도 오래 전에 냈다. 간신히 ‘똔똔’ 맞추고 있다.
▶남편도 화랑 일 하나?
-아니다, 목회자다. 아들 둘은 갤러리를 운영하는 등 미술 관련 일을 한다.
<사진은 지난 20일 개막한 조안나 바스콘셀로스 한국전(~5월17일까지) 작품 앞에 선 홍송원 대표, 런던 헌치 오브 베니슨 갤러리 디렉터, 둘째 아들(박필재 이사)과 함께 한 홍 대표>
글=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