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눈길 안주던 해외작품 소개
크리스티 회장도 인정한 세계적 안목
재벌가 최근들어 해외작품 직거래 선호
홍라희 관장·이명희 회장 등은 고객일뿐
맘에 들면 일단 질러 금융비용에 허덕
좋은작품 먼저 소개 공로는 인정받고싶어
홍송원(58) 갤러리서미 대표는 언론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더 자주 등장하는 화랑주다. 국내에서 고가의 미술품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그의 이름은 빠짐없이 오르내린다.
삼성 비자금 파문의 핵이었던 ‘행복한 눈물’(로이 리히텐슈타인 작),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로비 작품 ‘학동마을’(최욱경 작), 그리고 오리온 비자금 의혹과 관련된 ‘플라워’(앤디 워홀 작)까지 모두 그와 얽혀 있다. 이 밖에도 그의 이름은 ‘검은 돈(비자금)’ 이슈만 발생했다 하면 단골로 등장한다. “재벌 소장품 대부분을 그가 사줬고, 10~50배씩 올랐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과연 사실일까? 그가 입을 열었다. 언론의 카메라 앞에 정식으로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갤러리서미와 당신 이름은 안 빠진다.
-나도 참 난감하다. 일일이 변명하긴 싫다. 참 공교롭다. 그러나 이건 알아달라. 1988년 청담동에 화랑을 열었는데 한국작품이 워낙 비싼 데다 구하기도 힘들어 나는 남들이 눈길을 주지않던 해외작품을 소개했다. 그 작품들이 20년간 많이 올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측면이 있다.
▶그동안 당신이 권했던 작품들, 참 많이도 올랐다. 2억원짜리가 100억대가 됐다고 알려졌는데.
-그건 극단적인 경우다. 많이 오른 건 사실이나, 별로 안 오른 것도 있다. 또 지난 20년간 현대미술품 시장이 가파른 상향곡선을 그렸던 영향도 크다. 비근한 예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다. 리히터 작품은 2억원이었던 게 100억원대니까. 또 마크 로스코, 알렉산더 칼더, 도날드 저드, 신디 셔먼도 그렇다. 이들 작품은 5~30배쯤 올랐다.
▶오리온 비자금 사건은 어떻게 된건가.
-검찰에 불려가 말한 그대로다. 문제의 40억원은 시행업자인 박모 씨 돈이다.
▶당신이 오리온과 입을 맞추고 있다는데.
-수사로 밝혀질 것 아닌가. 난 자신있다.
▶그렇다면 ‘행복한 눈물’은 어찌 됐나. 한국에 있나.
-1992년인가? 세계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래리 가고시안(가고시안갤러리 대표)의 뉴욕 집을 찾았는데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식탁 옆에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이 너무 좋아 값을 물었더니 80만달러라고 했다. ‘헉’ 하고 물러섰다. 리히텐슈타인의 같은 시리즈 중 최고에 해당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이듬해엔 120만달러, 그 다음엔 200만, 400만, 800만 달러까지 오르더라. 그래서 2002년 뉴욕 크리스티경매에 거의 비슷한 작품(행복한 눈물)이 나왔길래 680만달러에 지르고 말았다. 그리곤 삼성에 팔려고 2년 넘게 기다렸는데 이재용 사장이 “만화 같은 그림을 700만달러나 주고 왜 사느냐”고 반대해 결국 못 팔았다. 이후 비자금 파문에 휘말리는 바람에 미국 측에 도로 팔아버렸다.
▶얼마에 되팔았나.
-밝힐 순 없으나 약 두 배쯤? 금융비용은 건졌다.
▶재벌 안주인과 유착돼 있다는데.
-삼성 리움의 홍라희 관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한솔그룹 이인희 전 고문 등등 많은 분들이 고객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로 만날 뿐이다. 집안 일 챙기고, 김치까지 담가주러 다닌다는데 말도 안 된다.
지난 20년간 주로 상류층을 상대로 일한 탓에 ‘재계 안주인 전담’으로 불려온 홍송원 갤러리서미 대표. 홍라희 관장, 이명희 회장 집의 김치까지 담갔다는 루머에 대해 “숨가쁘게 바쁜 그분들의 일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밝혔다. |
▶재벌가의 작품 구입, 당신이 독식한다고 들었다. 미술품을 ‘자금세탁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인식도 많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대단한 기업들인데 나하고만 거래하겠나? 예전엔 내가 상당부분 소개했지만 요즘은 글로벌 시대 아닌가? 직거래가 늘었다. 그리고 재벌들이 좋은 뜻으로, 미술관이나 공공장소에 설치하려고 산 작품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건 옳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현금거래도 없다. 현금 좀 만져봤음 좋겠다.
▶‘향후 뜰 만한 작품’을 찍어내는 안목, 당신이 한국 최고라 한다.
-아, 그렇게들 말하는 모양인데 난 한국 최고가 아니라 ‘세계에서 셋째 안’에 드는데? 하하. 언젠가 크리스티 경매의 에돌먼 회장을 만났을 때 “아, 저 작품 좋네. 나 할래요” 했더니 “송원, 네가 찍으면 영락 없더라. 당신 눈 세계에서 셋째 안에 들어”라고 했다.
▶그 좋은 눈으로 우리 미술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 좀 하질 그랬나.
-그런가? 나도 좋은 일 많이 했다. 청담동에 화랑 문 열었을 때부터 리히터, 저드, 톰블리, 댄 플래빈, 에드 루샤 등등 정말이지 많은 작가를 전시를 통해 소개했다. 단 난 사교성이 부족한지, 아니면 미술에 꽂히면 주위 사람들과 소통할 생각을 안해선지 질시를 많이 받았다. 일정부분 내 책임 인정하지만 좋은 작품을 남보다 먼저 소개한 공로는 인정받고 싶다. 지금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중 내가 들여온 게 많다. 이제는 그 가격으론 만져볼 수도 없다.
▶아트딜러 되기 전 요리 및 제빵제과에 심취했다던데.
-정신여고를 나와 이화여대 사회체육과를 다녔다. 테니스 유단자(?)다. 내 팔뚝 장난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요리를 배워 주위 친지들에게 (주로 집에서) 가르쳤는데 맛도 맛이지만 멋스런 상차림 때문에 반응이 좋았다. 재계의 혼례 디렉팅, 이바지음식도 조언했다. 그게 와전돼 ‘파출부까지 뛴다’고 소문이 난 것 같다.
▶당신 배짱은 알아주더라. 뛰어난 안목과 적중력에 두둑한 배짱까지….
-그 바람에 화랑 경영은 늘 허덕인다. 작품이 좋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일단 지르고보니 판매까지 시간이 소요돼 금융비용이 많이 든다. 좀 자제해야 하는데….
▶재벌가 및 부유층의 ‘미술품 컬렉션’을 자문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집 치장, 가구) 분야에 더 꽂혀 지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난 집 꾸미고, 살림 사는 게 취미다. 일보다 살림이 우선일 때가 많다. 알고보면 아마추어다. 얼마 전까지도 화랑(가회동) 2층의 한옥에 살았다. 요즘은 화랑 뒤편에 한옥을 컨템포러리하게 고쳐 살고 있는데 국내외 언론들이 ‘정말 근사하다’며 취재하겠다고 난리다. 나는 ‘예술품’으로 분류되는 아트퍼니처와 현대도자기도 무척 좋아한다.
▶당신도 재벌가 출신인가? 집안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재벌은 아니고, 평양고보 출신인 아버지께서 삼흥수산이라고 냉동수산업과 염전사업을 크게 하셨다. 시아버지께선 삼화제분이란 회사를 하셨고. 여동생(홍정원 씨)이 LS전선 구태회 명예회장의 며느리다. 동생은 나를 돕고 있다.
2002년 680만달러에 낙찰받아 약2배에 되판 ‘행복한 눈물’(리히텐슈타인). 오리온비자금 논란과 관련된 앤디 워홀의 소품 ‘플라워’(8억원), 갤러리서미가 전시 중인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의 ’왕’(3500만원). |
▶재벌가에 그림 팔아 아들에게 ‘짐’(체육관)에 수영장까지 딸린 저택을 사줬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나도 그 소문 들었다. 우리 아들집은 20억짜리 빌라를 사서 내부를 싹 고쳤다. 주차장 자리에 러닝머신 한 대 들여놓았더니 그런 말이 돌더라.
▶당신은 사업 욕심도 대단하더라. 가회동 화랑 외에 청담동의 건물 두 채를 임대해 갤러리(서미앤투스)와 스위스 비트라미술관 서울점을 운영하던데.
-커피숍(‘To Go’)을 빠뜨렸다. 가회동에 활기를 돌게 하려고 커피숍도 냈다.
▶남편도 화랑 일 하나?
-아니다, 목회자다. 아들 둘은 갤러리를 운영하는 등 미술 관련 일을 한다.
■홍송원(58) 대표는 누구?=충남 서천 출신으로 정신여중고와 이화여대를 나왔다. 결혼 후 뒤늦게 화랑업에 뛰어들었다. 뉴욕 및 런던의 크리스티 등에서 수십억, 수백억원대 그림을 턱턱 낙찰받는 것은 물론, 뉴욕 가고시안, 런던 헌치 오브 베니슨 등 특급 갤러리와도 거래하는 ‘거물급 딜러(화상)’다. 그가 고위층에 판 그림들 대부분은 요즘 들어 엄청나게 올라 ‘국내 최고 안목’, 또는 ‘족집게 딜러’로 꼽히며 컬렉터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삼성가를 비롯해 상류층에 가장 이슈가 되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면서 ‘미술계 숨은 실력자’로 자리를 구축했으나 삼성 비자금, 그림로비 사건에서부터 최근 오리온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잇따라 도마 위에 올랐다. ‘특권층을 위한 미술’을 막후에서 좌지우지하느라 일반 대중과는 소원했던 그는 “올 10월 ‘제프 쿤스 전’ 등 메가톤급 전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홍대표가 주목하는 유망작가
조안나 바스콘셀로스
윌리엄 와일리 인상적
홍송원 갤러리서미 대표와 장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쉴 새 없이 그의 휴대폰이 울려대기 때문이다. 개중엔 “재벌가에 2억에 소개했던 조각이 요즘 100억 한다던데 그런 작품 또 없냐?”는 질문이 적지않다. 그를 취재하러 간다고 하자 “뜰 만한 작품 좀 찍어달라고 해라”는 주문도 많았다.
비자금 파문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나 홍 대표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막강 정보력과 자본력을 가진 기업과 재계 사모들이 그에게 앞다퉈 컨설팅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날 선 안목’을 지녔다는 방증이다.
1990년대, 2000년 초 엄청난 고가였음에도 그를 통해 외국 작품을 산 고객들은 요즘 들어 ‘표정관리’를 해야 할 정도다. 특히 리히터, 로스코, 칼더, 윌렘 드 쿠닝, 아그네스 마틴, 도널드 저드, 에드 루샤, 데미안 허스트 등의 난해하고, 전위적인 추상미술은 요즘 값이 너무 올라 만지기조차 힘들다. 또 샬롯 페리앙, 조지 나카시마 등 예술가구를 일찌감치 소개한 것도 그다.
그는 “한국인들은 남을 따라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트 컬렉션은 나만의 취향이 필요하다. 또 확신이 섰는데도 이리저리 재거나, 우물쭈물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며 “이 작품이다 싶으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독자들을 위해 유망작가 한두 명을 꼽아보라고 하자 “우리가 가회동 화랑 재단장 기념으로 소개 중인 조안나 바스콘셀로스(포르투갈)를 추천하고 싶다. 또 윌리엄 와일리, 마크 그로잔 등도 주목해볼 만하다”고 답했다.
유력 화랑들이 국내 작가는 도외시한 채 외국작가만 찍는(?) 바람에 한국 미술시장이 자꾸 위축된다고 하자 “난 우리 작가도 많이 소개했다. 권경환, 배세화 등 우리가 미는 한국 작가도 많다”고 답했다.
이영란 기자/ 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