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나 바스콘셀로스(Joana Vasconcelos)는 현존하는 여성미술가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로 꼽히는 작가. 그의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결을 지닌 작업들은 유럽은 물론, 미국 등 서구 미술계에서 큰 찬사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여성작가의 작품 보다 그의 작업은 독창적이면서 뛰어난 상상력과 유머, 완성도까지 겸비해 “향후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를 이을 만한 재목”으로 운위되고 있다.
이 ‘미래 거장’을 한국에 소개한 화랑은 올 들어 기업의 비자금 파문의 중심에 섰던 가회동의 갤러리서미(대표 홍송원). 갤러리서미는 최근 화랑의 재단장(리뉴얼)을 마치고 바스콘셀로스 작품전을 연다. 그간 일부 상류층 컬렉터를 상대로 고가의 해외 미술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프라이빗 세일’ 공간으로 화랑을 운영해왔던 홍 대표는 “앞으론 좋은 전시를 통해 대중과 폭넓게 소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첫 주자로 서미가 선택한 조안나 바스콘셀로스는 지난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의 본 전시에서 탐폰(삽입형 여성 생리용품) 2만5000여개로 만든 거대한 샹들리에 형상의 작품 ‘신부(A Noiva)’를 출품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위트 넘치면서도 대단히 도발적인 이 작품은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놓았다.
데뷔 이래 바스콘셀로스는 1960년대 미술운동인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lisme)과 개념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 작업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 결과, 주로 일상의 오브제를 차용해 이를 미학적으로 해체, 재조합하며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드러낸 상징성과 맥락은 짧은 작가연한에도 불구하고 많은 담론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주로 대형 설치작업과 입체작업을 선보이는 바스콘셀로스의 작업은 지극히 페미니즘적이면서도 인간 내면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 인간과 사회 간 상관관계를 통렬하게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여성관객뿐 아니라 남성관객에게도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한국 전시 또한 ‘인식과 연관성’이라는 심미적 요소를 주제로, 오늘날의 시대를 지배하는 따분함과 지루한 풍경을 ‘상상’이라는 재기발랄한 요소에 대입시켜 활기차고 빛나는 풍경으로 바꾸고 있다.
영국 런던의 유명갤러리 헌치 오브 베니슨과 공동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한국을 주제로 한 신작 5점이 출품돼 화제다. ‘한류’ ‘낙동’ ‘음’ ‘양’ 등 지극히 한국적인 제목이 붙은 작품들은 포르투갈의 도예작가 보르달로 핀에이로의 채색도자기 위에, 코바늘로 뜬 아름다운 손뜨개를 덮어씌운 것들이다. 부드러운 손뜨개와 딱딱한 도자기가 서로 만나 이색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데다, 형상 또한 뿔 달린 황소 등 강렬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국 헌치 오브 베니슨 화랑의 매튜 케어리 윌리엄스 대표는 “한국 전시를 앞두고 조안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 5점의 참신한 신작이 나왔다”고 전했다.
오는 5월 17일까지 열리는 한국 전시에는 딱딱한 타일로 된 문(門)에 고치를 뚫고 나오는 애벌레를 대비시킨 대표작 ‘The Door’(2010년)와 스테인리스 냄비를 산처럼 쌓아 번쩍이는 하이힐 형상을 만든 대작 ‘Betty Boop’ 등 작가의 역량을 살필 수 있는 지난 10년간의 주요 작품이 망라됐다.
갤러리서미의 박필재 이사는 “바스콘셀로스는 3~4년 후 전시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을 정도로 세계가 그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다. 이번 한국전 또한 2년 전부터 논의한 끝에 비로소 성사됐다”며 “특히 내년에는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에 이어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대적인 작품전을 펼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고 밝혔다. 무료 관람. [사진제공=갤러리서미]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