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반전주의자들이 내세우는 투쟁의 방식은 전쟁이 낳은 참상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폐허와 굶주림, 상처에 우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감정에 호소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반전쟁의 방식은 전쟁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순진한 행동일 뿐이라는 게 ‘제3의 물결’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주장이다.
토플러는 ‘전쟁과 반전쟁’(청림출판)에서 전쟁을 도덕적으로 해석하거나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으로 막을 순 없다고 말한다. 먼저 인류가 전쟁을 일으키는 방식을 알아야 반전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명쾌하다. 인류가 전쟁을 일으키는 방식은 곧 부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투영하며 반전쟁을 유발하는 방식은 전쟁을 유발하는 방식을 투영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전쟁의 방식은 고도화됐는데 반전쟁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토플러는 농업혁명인 제1물결, 산업화혁명인 제2물결, 정보혁명인 제3물결 등 문명발달 단계에 따라 전쟁이 어떻게 이를 반영했는지 살핀다. 제2물결의 시대인 산업화시대는 대량생산체제에 맞게 전쟁의 핵심원리 역시 대량파괴다. 대량생산방식에 따라 무기도 표준화된 것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져 나왔다. 전쟁은 산업화의 진행을 가속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교체가 가능한 부품이라는 개념을 확산시켰다. 미국의 경우 이런 변화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1863년이다.
토플러는 제1물결과 제2물결이 충돌한 전쟁으로 미국이 대패한 베트남전을 든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첨단 무기를 보유한 미국의 패배는 미국 군대가 철저히 제2물결 세계에 적합하게 조직된 데 원인이 있다. 게릴라전과 같은 제1물결식 전투에 미국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제2물결과 제3물결이 충돌한 전쟁은 바로 걸프전이다. 이라크군은 전형적인 제2물결 시대의 단순한 군사기계에 지나지 않은 반면 연합군은 최첨단 무기를 자랑한다. 마치 컴퓨터게임하듯 벌이는 제3물결식 전쟁은 경제와 전쟁의 본질 사이의 유사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미래 전쟁은?
스마트 시대의 미래 전쟁은 다양하게 분화된 형태로 끝도없이 나타날 수 있고 전쟁의 주체가 누구인지, 동맹국이 과연 어느 쪽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예측이다.
다양한 신기술을 기반으로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우주전쟁, 생물학전쟁, 비살상무기들, 스마트무기들이 펼치는 제3물결의 전쟁을 이해해야 반전쟁이 가능하다.
토플러가 주장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90년대 나온 책인데도 불구하고 지역 전쟁이 빈번해지고 있는 21세기 전쟁을 읽어내는 데 무리가 없다. 전쟁과 반전쟁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 토플러의 높은 수준의 반전 인식 등 증오와 분노에 기댄 심정적 반전으로 일관해온 일반의 전쟁에 대한 인식이 깬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