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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의 진보가 되레 공포 키운다
불확실성·안전 강박관념

감시카메라 등이 불안조장

신뢰상실 탓 ‘날 공포’ 확산

사회혁신 동력마저도 약화

불신 극복이 최선의 해법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공포는 우리 건강과 식탁에 대한 염려로 확산되고 있다. 1년에 CT 촬영을 20번 한 것과 같은 양의 세슘이 나왔을 뿐인데도 비 한 방울이라도 맞지 않으려고 소란이다. 미역, 다시마가 슈퍼에서 동났고 소금 사재기도 일었다.

이런 유의 공포는 조류독감, 광우병 파동 등 우리에겐 낯설지 않다.

위험 및 공포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진 영국의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포의 실체에 주목한다. 건강이나 환경, 기술, 범죄 등이 불러오는 공포의 메커니즘과 함께 특히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들이 야기하는 공포가 어떻게 인간관계를 바꿔놓고 삶을 변형시키느냐다.

푸레디에 따르면 공포는 현대인의 삶의 일부로써 자기증식적이며 우리의 삶 속으로 확장해 들어오고 있다. 사람들은 범죄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데도 뭔가 불안해하며 공포에 휩싸여 있다. 과거보다 더 기술적으로 안전해졌는데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이런 공포문화의 기승을 신뢰의 상실에서 찾는다.

가령 아이들을 접촉하는 게 금지되고 엘리베이터에 낯선 사람과 함께 타는 게 불안한 사회는 이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라는 게 분명하다. 아이들은 어른에게서, 여성은 남성에게서, 노인은 젊은이에게서 괴롭힘을 당할까 두렵다. 또래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와중에 가장 고통받는 건 아이들이다. 외부세계는 출입금지 구역이 되어 끊임없이 계속되는 어른들의 감독을 받는다. 아이들은 사람을 알아갈 때부터 의심부터 하고 방어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학습하게 된다. 특히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강박적 염려가 불러오는 폐해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우리의 현실을 환기시킨다.

이런 불신의 사회에선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도 이타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게 아니라 범죄의 전조로 읽힌다. 남을 돕는 일, 이타성 등 시민의 책임을 연습할 기회가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공포문화는 서로를 피하고 모험, 탐구,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는 걸 꺼리게 만든다. 역사를 추동해온 힘과 혁신의 동력이 모험과 도전이라는 걸 감안하면 미래는 더욱 암담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공포에 대한 탐색은 표피적이지 않고 심층적이다. 과거 공포를 일으킨 대상들부터 학대문화, 아동보호현실까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질됐는지 살핀다. 공포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고 독립적이라는 점에서 과거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공포와 차이가 난다. 과거의 공포가 우리의 통제 밖에 있었던 자연이나, 핵, 유전자 식품 등 인간이 만들어낸 위험한 대상에 대한 공포였다면, 최근의 공포는 위험의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푸레디에 따르면, 경의를 포함하는 공포에서 ‘날 공포’라 부르는 것으로 전환됐다. 날 공포는 예측불가능하고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공포를 확대 재생산시킨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온통 위험하고 낯설게 인식된다.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와 위험에 대한 공포는 신뢰의 쇠퇴와 비례한다는 연구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과 이런 날 공포를 연관시킨 저자의 통찰이 빛나는 지점이다.

패닉이 어떻게 일어나고 왜 빠지게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도 저자의 남다른 인식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이러니는 공포문화의 확산에 기여한 것은 기술의 진보라는 사실이다.그렇다면 점점 더 생활을 제약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공포문화에서 벗어나려면 어떡해야 하나. 공포는 위험을 경고하고 조심하는 것으로 해결되기는커녕 더 욱죈다. 이웃을 ‘유독한 이웃’으로 여기고 감시카메라를 달고, 지킴이를 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공포산업을 육성시킬 뿐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공포를 만들어내는 구조, 인간 불신과 불신 사회를 극복하는 길 만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냄으로써 공포문화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흔히 패닉을 일으키는 대상을 환경이나 과학기술 등에 집중해온 데서 벗어나 패닉을 일으키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낸 저자의 밝은 눈과 예리함이 빛난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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