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패트릭 카리우(Patrick Cariou)는 리차드 프린스와 뉴욕의 명문화랑인 가고시안 갤러리, 그리고 리졸리 출판사에 대해 “나의 저작권을 허락없이 침해했다”며 지난 2008년 12월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승소했다. 그는 자신의 사진들이 프린스의 ‘Canal Zone’(운하지대) 연작에 무단으로 도용됐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프린스는 ‘강인한 미국 남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인 ‘말보로(Marlboro)’ 담배광고를 그대로 패러디한 ‘무제-카우보이’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작가. 미술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사진을 특별히 배우지도 않은 그는 “난 카메라의 기술적 측면은 모른다. 그런 기술도 없다. 그저 허름한 상업적 실험실에서 잡지광고를 재촬영해 두번째 에디션을 만들 뿐이다. 암실에 전혀 들어가지 않고 말이다”라며 기염을 토했다.
그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찍은 일련의 작업은 현대미술계에 ‘Rephotograph’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탄생시키게 한 계기가 됐다. 특히 말보로에 의해 고용된 상업사진가가 찍은 광고사진을 패러디한 ‘무제-카우보이’는 경매에서 무려 100만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게리 그로스라는 작가가 찍은 브룩 쉴즈의 열살 무렵 누드사진을 재촬영했는가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십대 소녀들의 사진을 촬영한 Gangs의 ‘Girlfriends’ 시리즈의 패러디로 갖가지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미술사가인 정은영 박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현대미술에선 유명 이미지를 차용해 작업하는 예가 적지않다. 프린스는 그런 면에서 단연 독보적인 작가다. 갖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그의 차용작업은 많은 담론을 형성했다. 단, 기존의 사진을 차용할 때는 원작을 패러디했음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맥락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원작을 얘기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다면 그건 도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프린스와 가고시안 갤러리가 항소할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 남의 사진을 허락도 없이 차용해 작업하던 프린스는 ‘차용미술가’가 아닌, ‘도용미술가’란 오명도 얻게 됐다. 그러나 평소 “주제가 제일 중요하고, 도구는 그 다음(The subject comes first, the medium second)”임을 주창하며 낯익은 이미지들을 차용해온 프린스의 높은 콧대는 여전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구설까지 즐기니 말이다.
이영란 선임 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