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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아이들 마음에 '괴물' 있다
현직 교사가 본 교실 풍경...학교 폭력 실상

선한 눈망울의 동물이 보인다. 눈만 보면 코끼리 같지만 뽀족한 털은 고슴도치를 떠올린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문학동네, 2011)란 제목처럼 괴물을 표현한 걸까. 어쨌든 제목과 표지에서 시선을 끌었으니 이미 성공했다 하겠다.


 청소년 문학이 활발하다는 건 반가운 일이나 실체를 들여다 보니 무조건 좋아할 수 없다. 청소년 문학엔 학교 폭력, 왕따, 성적 비관, 부모 세대와 선생님과의 갈등이 등장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 모른다. 우리 아이들의 고민이 단순한 차원을 벗어난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건 슬픈 일이다.


 이 소설도 그러하다. 아니, 훨씬 충격적이다. 뉴스에서 접한 일들을 글로 읽어내는 일은 더욱 힘든 일이다.  저자가 현직 교사다. 해서 부모보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니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겠지 싶다.


 소설은 남자 중학교 2학년 교실을 공간으로 담임 선생님, 모범생 반장인 태준, 조용한 성격으로 왕따를 당하는 영섭, 세 명의 시선으로 교실을 묘사한다. 그러니까 학교 폭력의 중심에 선 아이들의 실상을 다룬 소설이다. 영섭의 목소리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나는 황라사마귀가 되고 싶다. 나는 황라사마귀다. 황라사마귀는 운동장만큼 넓은 초록색 잎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한다. 나뭇잎 위에 내가 있다는 건 누구도 알 수 없다. 보이지 않으니까. 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팔다리 관절을 꺾어 멋들어진 춤을 추고 얼굴에 콩만 한 마이크를 붙이고 섹시한 웃음을 지우며 하늘을 찌르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p. 7


 이 글로 영섭이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 떠올랐다. 아이의 두려움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자신을 못살게 구는 아이들에 대한 두려움과 또래 아이들처럼 신나게 놀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은 태준에게 영섭을 부탁한다. 아이들의 심한 장난이나 괴롭힘을 제재해야 하는 게 반장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반장을 맡고 싶지 않았던 태준은 고민한다. 영섭을 도와줘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건 쉽지 않다.


 친구를 괴롭히며 즐거워하고 그게 나쁜 일이라는 걸 알지만 모른 척 하는 아이들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중학교 2학년 15살 혹은 14살 아이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도대체 그 아이들을 지배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아이들. 아이들 마음에 저마다의 괴물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괴물을 만든 건 누구인가.


 소설에 등장하는 책 <사바나에 사는 동물들>은 그런 교실의 풍경이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바로 학교의 교실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결코 소설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잔인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집이나 학원에서 모범생인 아이가 학교에서 돈을 갈취하고 폭력을 일삼다니, 아이들의 이중성과 폭력성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이나 조카가 될 수 있는 아이였다. 


 올바른 인성 교육이 사라진 학교,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바로 어른이 아니던가. 성적과 입시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방식, 그 안에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우정에 대해 말한 적이 있던가. 부끄러운 일이다. 친구들과 잘 지내라는 말뿐 깊은 애정으로 아이의 학교생활에 귀 기울이고 세세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가.


 책을 읽은 대부분의 부모는 내 아이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부모의 착각일지 모른다. 과연, 내 아이에 대해 다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엄마, 아빠가 몇 이나 될까. 청소년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크면 클수록 말이 통하지 아이 때문에 속상한 부모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아이와 함께 읽으면 더 좋다. 아니, 청소년 문학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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