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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미술의 새 영역, ‘파운드 푸티지(발견된 화면)’를 아세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코리아나미술관(관장 유상옥)은 코리아나화장품이 운영하는 현대미술관입니다. 지난 2003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은 1년에 두 차례 본격적인 기획전을 엽니다. 물론 중간중간 작은 전시도 곁들여지지만 봄, 가을 전시는 꽤나 공을 들이는 ‘간판급 기획전’입니다. 따라서 내용이 꽤 알찹니다.

7일 개막하는 ‘피처링 시네마(Featuring Cinema)’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의 영화 이미지를 새로운 문맥에서 편집, 재배열해 새로운 차원의 리얼리티와 의미를 빚어내는 비디오아트의 새 흐름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설명만 들으면 ‘또, 어렵네…’ 할 수 있지만 그냥 편한 마음으로 찾아, 차분히 영상을 따라가면 됩니다. 단 시간은 좀 넉넉하게 잡는 게 좋습니다.

전시에는 비디오아트와 실험영화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국내외 주요 작가 9명의 작품 10점이 나왔습니다. 브루스 코너(Bruce Conner 미국), 크리스토프 지라르데 & 마티아스 뮐러(Christoph Girardet & Matthias Müller 독일),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프랑스), 임민욱(Minouk Lim 한국), 마누 룩스(Manu Luksch 오스트리아),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t 호주), 올리버 피에치 (Oliver Pietsch 독일), 노재운(Jaeoon Rho 한국) 등 작가들의 면면은 꽤나 화려합니다. 장르별로는 싱글채널 비디오, 다채널 비디오, 16㎜ 필름, 영상설치가 망라됐고요.

출품작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를 재조합한 것이 공통점입니다. ‘발견된 화면’이라는 뜻의 ‘파운드 푸티지’는 현대미술계에선 (본래의 뜻에서 한걸음 나아가) 누군가가 찍어놓은 필름을 차용해 이를 자기 식으로 재편집하는 기법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몽타주하는 게 아니라 또다른 작가적 시각과 미감으로 이를 비틀거나 엉뚱하게 조합하는 것이 특징이죠.


예를들면 본격적인 ‘파운드 푸티지 필름’의 원조로 꼽히는 브루스 코너(Bruce Conner)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영상이미지들을 병치시켜 중층적인 의미를 제시합니다. 코너는 영화, 뉴스, 광고에서 추출한 전혀 상관없는 영상들을 무작위적으로 편집해 ‘시각의 파편화와 낯섦의 효과’를 보여줍니다. 이같은 반(反) 서사를 통해 자신의 작업의 메타 미디어적 속성을 드러낸 것이죠. 상호모순된 공간들의 다층적 구조는 끊임없이 열려지고, 기이하면서도 복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 관람자로 하여금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1986년 제3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86)의 저 유명한 장편영화 ‘희생’은 한국의 젊은 작가 임민욱에 의해 8분짜리 영화로 압축됐습니다. 임민욱이 점프 컷 기법으로 재구성한 ’희생’은 유장하기 이를 데 없었던 원작과는 달리, 조각난 파편으로 존재합니다. 결국 원작의 숭고함 대신, 과도한 시간의 압축으로 인해 불확실성과 불안을 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피처링 시네마’전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됐습니다. ‘파괴와 조합의 미학’ ‘네버엔딩 스토리’ ‘영화의 재구성’이 그것으로, 작품들은 기존 영화의 문맥을 해체하면서 끊임없는 의미의 연쇄작용을 일으킵니다. 관객은 이미지 통로에 자연스럽게 빠져들면서 어느새 스스로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감독이자 에디터(편집자)이기도 한 영상작가의 작업이 어떻게 영화의 일루전을 해체하고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영화와 미디어가 우리의 인식과 지각을 어떻게 조정하고 개입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읍니다.

전시를 기획한 유승희 부관장은 “출품작은 영화장면을 차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의 장치와 서사를 이용해 인간의 깊은 내면, 그들의 상처를 다층적이고도 은밀히 건드린다”며 “원작에 익숙한 관객은 영상 조각이 파생시키는 수백가지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서사를 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파운드 푸티지로 꽤 흥미로운 작업을 해온 작가들의 기묘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작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5월말까지 이어집니다. 개막일인 7일 오후에는 오프닝 세미나도 열립니다. 영국 랭카스터대학 현대예술연구소 박사인 임산 씨가 ‘비디오아트와 파운드 푸티지 필름의 상호관계성’이라는 제목으로, 정신분석학자이자 영화 칼럼니스트인 김서영 교수(광운대)가 ‘영화 이미지 차용과 반복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이란 타이틀로 각각 발제를 합니다.

또 연계 교육프로그램으로 ’네 멋대로 시네마’가 매주 토요일 두차례 열립니다. 관람료는 일반 3000원, 학생 2000원입니다. 02)547-9177. 사진제공=코리아나미술관.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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