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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칠부터 샤갈까지…인물 사진의 대가 카쉬전
문이 열렸다. 30대 초반의 젊은 사진작가의 눈 앞에 마침내 그가 섰다. 제2차 세계대전을 지휘한 칠순을 앞둔 영국 총리. 연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막 들어온 총리는 젊은 사진가가 켠 각광에 눈살을 찌푸린다. 겨우 설득해 노총리를 카메라 앞에 세웠지만 그는 피우던 시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젊은 예술가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며 노총리의 입술에서 시가를 뺏어냈다.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이 카메라 렌즈에 맺혔다. 피사체는 윈스턴 처칠, 작가는 유서프 카쉬, 작품 제목은 ‘으르렁거리는 사자’가 됐다.

세계적인 인물 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쉬(Yousuf Karshㆍ1908~2002)의 작품을 망라한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이 오는 5월 2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4000여 점의 카쉬 작품 중 총 100여 점의 대표작이 선을 보인다.

지난 2009년에도 한 차례 카쉬전이 있었지만 보스턴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작 중 일부를 그대로 들여왔던 것. 이번에는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으로 카쉬의 대표작을 골랐다. 지난 전시에선 볼 수 없었던 인물 사진들이 제법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무하마드 알리, 넬슨 만델라, 앤디 워홀, 마르크 샤갈, 루돌프 누레예프, 글렌 굴드 등이다.

카쉬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대상의 직업과 성격 등 인간적ㆍ사회적 특성을 결정적 한 컷에 담아냈다는 것. 이를 위해 카쉬는 촬영 전 해당 인사의 거의 모든 작품을 감상하고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며 현장에선 인물과 인간적인 소통을 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오드리 헵번의 청초한 아름다움부터 악동 무용수 누레예프의 천진한 웃음을 끌어냈다. 또 호안 미로와 월트 디즈니 등의 동심 어린 작품세계를 그들의 얼굴 위에 펼쳐내기도 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 중인 뒷모습,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고뇌하는 얼굴 등은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전시장에 흐르는 음악도 무심히 선곡된 것은 아니다. 굴드를 비롯해 야샤 하이페츠, 파블로 카잘스 등 사진으로 내걸린 클래식 연주자들의 연주다.

유진선 전시 큐레이터는 “20세기 아이콘들을 한자리에서 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작품으로부터 묵직한 감동을 받고가는 관객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1544-1681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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