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요즘 신세대가 그의 이름을 들어봤다면, 영화 쪽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 '이레이저 헤드'부터 '불루 벨벳', '트윈 픽스'까지, 하나같이 독특한 영화의 지휘자다. 여러 단상이 들 그 영화 속에서 여전히 기억에 남는 단어 하나는 기괴함이다. 특히 트윈 픽스에서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는 장면들은 세월의 풍화작용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컬트의 제왕이라 불리는 린치 감독이 펴낸 <빨간방>(그책. 2008)은 반갑고 낯설다. 그의 창조와 직관 비밀을 드러낸 책이라는 점에서 반갑고, 전혀 기괴함을 느낄 수 없는 긍정과 낙관의 가치관이 낯설다.
삶에 있어 그의 철학은 즐거움이다. 일을 할 때 누군가를 혼내키는 걸 반대한다. 그에게선 영화 찍는 일이 해당된다.
'일이란 재미있어야 한다. 일을 할 때도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즐거울 것을 기대한다. 마치 강아지가 꼬리 치듯 우리는 모든 것이 재미있으리라 기대한다. 삶이 대단하고 매혹적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본문 중)
즐거움과 재미의 원천은 명상인 듯 하다. 책에는 초월, 의식과 같은 불교 '선'적인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순수하고 진동하는 의식의 바다가 있다. 초월명상을 통해 '초월'하게 될 때 당신은 순수한 의식의 바다로 잠수해 들어간다. 그 바다로 풍덩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엄청난 행복감이 밀려온다.'(본문중)
우리는 모두 직관력을 기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린치는 이 직관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직관은 명상을 통해, 자신 속으로 잠수해 들어감으로써 예리해지고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각자의 내부에는 의식에 바다가 있느데, 그곳은 해결책의 바다이기도 하다. 당신이 그 바다, 즉 의식 속으로 잠수해 들어갈 때 직관은 더 생생해진다.'(본문 중)
이 책에 대해 한 영화잡지는 린치의 '창작노트'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말처럼 책에는 영화 속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기원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최초의 순간에 아이디어는 일종의 섬광과 같다"며 "당신은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한 최초의 아이디어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톡톡 튀는 발상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그 출발은 욕망이다. 간절히 원해야 한다.
'아이디어에서 욕망은 미끼와 같다. 낚시를 할 때 당신은 끈질기게 기다려야 한다. 바늘에 미끼를 꿰어 던져놓고 나서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욕망은 다른 아이디어를 끌어들이는 미끼다. 신통한 일은 당신이 좋아하는 물고기 한마리를 잡으면, 그것이 작은 물고기-아이디어 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다른 물고기를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당신의 낚시에 걸리게 된다. 이제 본 궤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곧 점점 많은 조각이 모이고, 이윽고 전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본문 중)
우리는 작가나 화가 혹은 그 외 분야의 거장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듣는다. 한번 물고기를 잡아본 이는 미끼가 좋으면, 또 좋은 '물'이면 조황을 확신한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 여정이 문제다. 책에서 가장 반가운 대목은 아래의 소박한 생활 철학 부분이었다. 욕망과 결핍, 그것이 창의력의 한 원천이다.
'제약'은 가끔 마음을 일깨운다. 쓰고도 남을 만큼 많은 돈이 있다면 당신은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돈이 별로 없다면 당신은 돈이 들지 않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