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에도 도윤희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더없이 절실하고, 본질적인 것들을 포착해냈다. 출품작들은 시간과 생명, 인간의 본질과 그 근원을 탐구한 끝에 탄생된 것들로, 미지의 세계로부터 오는 신호처럼 신비롭고 명상적이다.
도윤희는 갈수록 삭막해지는 현대인의 일상 속에 숨겨진 감성적인 세계를 표면으로 끌어내려 했다. 현실과 존재에 대해 끈질기게, 그리고 차분히 성찰한 끝에 이를 ‘시적 추상’으로 형상화한 것.
특히 이번 개인전에선 자연이라는 대상을 관조하며,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유를 통해 ‘마음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런데 그 과정은 마치 도를 닦듯 지난한 시간과 공력을 요한다. 유화물감을 캔버스에 입힌 후 흑연으로 촘촘히 메운 뒤 바니쉬로 마감하는 과정을 수십회 반복하며 레이어를 만들었다. 그 결과 화폭에선 미묘한 깊이감이 배어난다.
도윤희는 지난 2007년 유럽의 명문화랑인 스위스 바이엘러갤러리(Galerie Beyeler)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가졌고, 이번에 그 이후 제작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인간 삶이 알고자하면 할수록 불가사해하듯, 최근들어 삶이 더욱 여러 빛깔로 보인다”는 작가는 물, 햇빛, 얼음, 꿀과 먼지 등을 소재로 이를 사물과 풍경에 국한하지 않고 그 안에서 느끼거나 성찰한 세계를 뽀얀 잿빛, 또는 검푸른빛 추상으로 아름답게 직조해냈다.
표제작인 ‘Unknown Signal’은 대형 설치작업이다. 몇년 전 앙코르와트를 찾았을 때 아침 저녁으로 산책했던 강가의 일렁임을 9점의 디지털 프린트와 조명작업으로 표현했다. 강물을 어루만지는 빛의 변주를 음미하려면 이 작품 앞에선 좀 시간을 갖고 차분해져야 한다.
검은 어둠을 누르고, 몽글몽글한 하얀 어둠이 구름처럼 드넓게 밀려드는 ‘백색 어둠’이란 작품도 흥미롭다. 반대되는 현상의 공존을 표현하고자 한 이 작품은 새벽녘에 빛이 다가오며 어둠이 사라지는 여명의 순간을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이밖에 빛을 받은 먼지가 꿀에 달라붙는 이미지를 표현한 ‘꿀과 먼지’, 얼음 보다 더 차가운 인간 내면의 냉기를 형상화한 ‘살아있는 얼음’ 등의 작품은 마치 동전의 이면처럼 서로 다른 이질적 세계를 한 화폭에 담아낸 것들이다.
작가는 “인간 삶의 이면에는 아주 작게 흩어져 있어 섬세히 관찰하지 못하면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며 “내 작업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현실과 자연, 우주의 이면에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독백의 결과”라고 덧붙였다. 4월 24일까지. 02)2287-3500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