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을 하면서도 뮤지컬 ‘광화문 연가’시놉시스 작업을 했다는 그.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작품이 그의 손을 떠나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완성작으로 올랐다.
‘좋은 노래는 질리지 않는다’는 믿음에도, 대극장이라는 넓은 공간과 3시간에 이르는 공연 시간은 의문을 남겼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저 큰 무대를 어떻게 채울까,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끌어갈까. 막은 올랐고, 곧 괜한 우려였음이 드러났다.
넓고 깊은 무대 양 끝은 하얀 피아노 두 대가 열었다. 현재의 상훈은 이야기 콘서트를 구상하는 가수 지용과 이야기하면서 과거를 더듬어 간다. 유명 작곡가 상훈은 서점직원 여주의 목소리를 듣고 반한다. 그의 절친한 후배이자 운동권학생인 현우 역시 여주를 사랑한다. ‘표현하는 사랑’에 여주는 현우를 택하고 상훈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본다.
앞으로 기울어진 중앙 무대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무대 양쪽 공간을 활용했다. 이영훈의 숨결이 느껴지는 악보들은 배경이 됐고 그가 만든 노래는 그 자체로 이야기였다. 상훈과 현우, 그리고 여주가 엇갈리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흐를 때, 덕수궁 돌담길 위엔 악보가 뜨고 내리는 음표는 라일락 꽃잎처럼 흩날리는 감각적인 무대도 연출됐다.입체적인 무대는 과거와 현재를 산만하지 않게 오갔다. 80년대 청춘의 사랑과 젊은 날의 투쟁은 같은 공간에서도 다른 색깔로 교차시켰다.
1막에 많은 것들을 보여준 탓에 2막은 약간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사가 거의 없이 4곡 가량이 이어지는 마지막까지 끌어가는 힘은 역시 이영훈의 노래였다.
이영훈의 노래는 세대의 경계마저 무너뜨렸다. 지용 역으로 출연한 비스트의 멤버 양요섭을 보기 위해 객석을 찾은 소녀팬들에게 감미로운 선율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붉은 노을’ 외엔 이영훈 작곡가의 곡을 몰랐다는 양요섭을 캐스팅 한 것에 대해 “어린 세대에게 이영훈 작곡가의 곡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 이지나 연출의 의도는 제대로 맞아 떨어진 셈이다.
반면 3, 40대는 너무도 익숙해서 따라 부르고 싶은 욕구를 애써 눌러야 했다. 커튼콜 때 3층 객석까지 가득 채운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쳤고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과 ‘붉은 노을’이 연이어 흐를 땐 모두가 신나게 따라불렀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가수 이문세와그룹 비스트 멤버들, 배우 김강우, 윤다훈, 디자이너 이상봉, 송창의와 상훈 역에 더블캐스팅된 윤도현도 이 같은 열기를 함께 즐겼다.
작곡가 ‘상훈’이 아닌 ‘영훈’과 함께 작품 속 작품 ‘시를 위한 시’를 만들어 간 듯한 느낌으로 돌아오는 길, 가사는 여전히 맴돈다.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에 꽃잎도 띄울게’
<윤정현 기자 @donttouchme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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