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엔 낯선 ‘근대의 유물’
서도호·이쾌대 등 작품 통해
잊혀진 한국사 반추
인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 한 토인비는 역사 속에서 ‘진실(truth)’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역사는 과거이자, 오늘과 내일을 만드는 실체인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첨단 앱은 주르르 꿰도, “한국이 언제 해방됐느냐?” 물으면 “1960, 아니 70년?”이라 답하는 게 우리 신세대다. 이에 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이 여는 전시는 각별하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통해 역사를 읽고, 역사를 다시 보는 기획전이기 때문이다.
리움은 2011년 첫 전시로 우리 근현대사를 조망한 예술품과 기록물을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를 17일부터 6월 5일까지 연다.
이번 기획전은 고도성장한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고난과 격동의 20세기’가 시각예술에선 어떻게 반영되고 기억되는지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 삶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자리다. 전시는 크게 1, 2부로 짜였다. 우리 근현대사를 해방을 기점으로 나눠, 1부 ‘근대의 표상(1876~1945)’, 2부 ‘낯선 희망(1945~2011)’으로 구분해 미술사에 남겨진 작품들과, 현대작가들이 역사와 기억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또 근현대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 우국지사의 유묵(遺墨),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조선 관련 일본의 우키요에까지 총 80여점이 출품돼 ▷비교와 충돌 ▷동일성과 차이 ▷연속과 불연속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를 해석하고 있다.
기획자인 이준 부관장은 “이번 전시는 역사를 개념이 아닌 ‘이미지’로 읽어낸 것이 특징으로, 연대기적 방식이 아니라 몽타주 방식을 이용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것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와 민족 간 전쟁, 전후 국가재건과 친일 청산, 반공 이데올로기, 유신독재와의 끊임없는 투쟁 등을 통해 일궈낸 결과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기억의 터’는 사라지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이렇듯 ‘한데’로 내몰린 한국 근현대사를 ‘예술’을 통해 되살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지난 100년간 미술사에 남겨진 역사적 작품을 씨줄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날실로 근현대사를 재구성했다. 이를테면 해방 이후 분열된 조국을 그린 월북화가 이쾌대의 역작 ‘해방고지’(1948년 作)와 제주 4ㆍ3 항쟁을 묘사한 강요배의 ‘한라산자락 사람들’(1992)을 나란히 내거는 식이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다룬 1부 ‘근대의 표상’에선 당대 제작된 작품들과 함께 이 시기를 재해석한 현대작가들의 작품이 병치됐다. 개화기 조선 궁궐을 기록한 휴버트 보스의 ‘서울풍경’(1899)과 국가를 잃은 설움을 담은 안중식의 ‘백악춘효’(1915)가 현대작가 손장섭의 ‘조선총독부’(1984년)와 조화를 이룬다. 역사적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박생광의 ‘명성황후’(1983년)는 김은호의 ‘순종어진’(1923~1928)과, 망국의 한을 담은 채용신의 ‘유학자 초상’(20세기 초)은 서용선의 ‘동학농민운동’(2004)과 함께 배치돼 암울했던 시대를 제각기 조명한다.
1910년대 이후 일본에서 서양미술을 배우고 돌아온 유학파 화가들과, 1930년대 신문화를 수용하며 탄생한 김기창의 ‘가을’(1934),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1934) 등은 식민지 정책과 부합하되 조선의 향토색 경향도 대변하고 있다.
2부 ‘낯선 희망에선 해방 이래 현재까지 근현대사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기억, 고증으로 제작된 작품들과 현대 한국사회를 증언하는 다양한 작품을 병치해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비극, 이에 따른 반공 이데올로기 등을 다룬 현대작가의 작품이 두루 출품됐다. 이중섭의 ‘투우’(1956), 전화황의 ‘전쟁의 낙오자’(1960)가, 현대사진가 구본창의 한국전쟁 관련 신작들(2010)과 함께 연출돼 흥미를 돋운다.
또 장욱진의 ‘나룻배’(1951), 박수근의 ‘시장’(1950년대) 등 고단했던 서민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을 윤석남, 안창홍 등 현대작가의 작품과 비교해보도록 했다. 이승만, 박정희 등 정치지도자를 다룬 작품도 나와 현대사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려준다.
홍라영 리움 총괄부관장은 “급격한 성장의 시대를 겪어온 기성세대에겐 그간의 세월을 회고하는 계기가 되고, 청소년들에겐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좀 더 친근해지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