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 왕릉은 우리 모두의 휴식공간이 됐다. 특히나 42기의 조선왕릉 중 서울에서 100리(약 40㎞) 안에 남아 있는 39기의 왕릉들은 삭막한 서울 시내에서 아름다운 녹지를 제공한다. 특히 3월 중순부터 시작해 5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봄철에는 왕릉마다 진달래, 산벚나무, 산수유, 개나리 등이 피어나 행락객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왕이 된 기분을 느끼며 왕릉으로 꽃 나들이 떠나보자.
▶동구릉에서 시작한 꽃구경은 파주 삼릉까지 이어지고=왕릉 중에서 가장 먼저 꽃구경이 가능한 곳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건원릉과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유릉, 경릉 등 9개의 능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는 자연학습장 한 곳에서 3월 15일부터 4월 25일까지 할미꽃 등 한국의 야생화가 전시된다. 아이들에게 꽃구경도 시키고, 각 능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도 전해주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특히 동구릉 관람로를 따라 피어나는 산수유의 빛깔도 곱다.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산수유 열매는 빨간 구슬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 사진을 찍어보면 어디에 사진기를 들이대도 작품사진들이다.
▶3단으로 구성된 조선왕릉=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려면 능의 구조에 대해 알고 가는 게 좋다. 능은 왕릉이 있는 능침공간과 석물들이 있는 2단, 3단 부분, 그리고 주변에 부속건물과 숲, 잔디밭 등이 있는 공간으로 나뉜다.
능침공간에는 양지바른 곳에 넓은 풀밭을 만들고 거대한 능을 만든다. 옆으로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병풍석 12면을 세운 뒤 13칸의 난간석을 두른다. 그 외에도 돌로 만든 양과 호랑이상 각 2쌍과 혼유석을 배치하고 양쪽에 망주석을 1쌍 세운다. 그 옆으로 다시 3면의 곡장을 설치하고 나서야 능침공간이 완성된다.
한 단 아래에는 문인석과 석마 1쌍, 그리고 혼령에게 길을 알려주는 장명등이 배치된다. 다시 그 한 단 아래는 무인석과 석마 1쌍이 배치되는 등 2단, 3단 부분이 있다. 그 주변으로는 수복방, 수라간, 어도(임금 행차길), 우물 등을 만들고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때죽나무, 오리나무,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철쭉, 진달래 등이 넓게 펼쳐 봄에는 꽃향기를, 여름에는 녹음을,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상록수의 푸름을 각각 뽐낸다.
▶건원릉엔 왜 억새가?=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은 잔디 대신 억새로 떼를 입혔다. 태조가 계비 신덕왕후의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데 앙심을 품은 태종이 일으킨 ‘왕자의 난’. 권좌에 오른 태종은 신덕왕후 옆에 묻히길 원했던 태조의 원을 철저히 묵살했다.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을 파괴한 뒤 태조를 홀로 모신 쓸쓸한 무덤이 건원릉이다. 태종은 뒤늦게 뉘우치고 아버지 고향 함흥의 억새를 가져다 봉분에 심고 깍듯이 예를 갖췄다고 한다. 이후 태조의 건원릉만은 잔디가 아닌 억새로 떼를 입혀 갈색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의 반목이 부른 애처로운 광경이다.
반대로 경기도 화성의 융릉, 즉 사도세자와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 합장묘는 부자간 정이 담긴 효심의 결정이다. 정조가 뒤주 속에서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을 풀어주고 복권의 상징으로 세운 게 융릉이다. 정조는 지금 서울시립대 터의 사도세자 능을 화성으로 옮겨 세운 융릉을 틈틈이 참배했다. 상경길, 서울로 향하는 1번국도변 지지대고개에서 눈물짓곤 했다는 효심이 읽힌다. 정조는 죽어서도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융릉 근처에 건릉을 만들어 곁을 지켰다.
융릉에는 1790년 풍수적 원리에 의해 지어졌다는 연못 ‘곤신지’가 있다. 곤신방(주역에서 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으로 풍수적으로 이곳에 물이 있으면 좋다 하여 연못을 판 것이다. 연못 근처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위를 식히기 제격이다. 융릉과 건릉 사이의 산책로는 보통 화재예방을 위해 통제하지만 5월 15일을 기준으로 개방하고 있다. 떡갈나무와 때죽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 산책로를 걸으면서 정조의 효심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