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1983년 동산방 화랑이 조선 후기 회화 83점으로 열었던 ‘조선시대 후기 회화’전의 뒤를 잇는 전시다. 물론 1974년 개관한 동산방 화랑은 그간 고서화 전시와 한국화(동양화) 전시를 꾸준히 열긴 했으나 조선 후기 회화사에 이름을 남긴 명인들의 골갱이에 해당되는 작품을 한데 모은 것은 근 20년 만이다.
조선 후기 서화의 진면목을 일람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산수, 인물, 풍속, 화조, 사군자가 다양하게 망라된 데다, 서예 작품도 다수 곁들여져 가히 옛 그림에 대한 향수가 일어날 만한 분위기다. 전시 기획과 작품 해설에는 유홍준 명지대 교수(전 문화재청장)가 참여했다.
현재 심사정의 ’화조도’ 32.3x23.8cm, 지본담채. 아래는 추사 김정희가 부채에 쓴 서예 작품. ‘평생 마음을 지키는 힘이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을 막지 못하네 세상살이 삼십년이 지나서야 공부한다는 것이 복임을 바로 알았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래는 윤제홍(尹濟弘)의 ’연강귀어(烟江歸漁)’, 30x35.4cm, 지본수묵(紙本水墨) 사진 제공=동산방화랑 |
니금(泥金)으로 댓잎이 쭉쭉 뻗어 올라가는 모습과 아래로 늘어진 모습을 두 폭에 표현한 이 그림에 대해 유홍준 교수는 “탄은의 굳세면서도 능숙한 운필이 잘 살아난 작품”이라고 평했다. 수운 유덕장의 ‘설죽도’와 자하 신위의 ‘묵죽도’는 탄은의 뒤를 이은 조선 대나무 그림의 맑고 격조높은 시정을 보여준다.
수염 한올한올까지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묘사한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감주주마’는 술에 취해 말을 타고 가는 그림으로, 말 그림에도 능했던 공재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겸재 정선의 그림으론 진경산수인 ‘부아암’과 여름의 산하를 비교적 대작으로 그린 산수화가 나왔다. ‘역시 겸재’라는 찬사가 나올 정도로 담담하면서도 기품 넘치는 작품들이다. 또 김윤겸, 정충엽 등 겸재일파의 진경산수도 출품돼 겸재의 그림과 비교 감상해볼 수 있다.
지본수묵(紙本水墨) |
추사 일파의 그림으로는 자하 신위, 우봉 조희룡, 황산 김유근, 혜산 유숙, 소치 허련의 수작이 출품됐다. 아울러 ‘신(新)감각파’로 지목되는 북산 김수철, 일호 남계우의 그림과 조선말기 회화사를 보란듯 장식한 오원 장승업의 ‘화조 기명’ 8곡병풍을 만날 수 있다. 석파 이하응의 예리한 춘란(春蘭)과 운미 민영익의 담백한 대나무 그림은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특별전은 출품 작가로 보나 작품으로 보나 조선시대 회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며 옛 그림에 대한 은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연강귀어(烟江歸漁)’ |
화랑가에선 흔치 않은 고서화전이 모처럼 열리게 된 것은 1974년 개관 이래 한국화(동양화) 전문화랑으로 명맥을 이어온 동산방의 힘이 컸다. 출품작들은 동산방의 창업주 박주환(박우홍 대표의 부친) 씨 때부터 화랑과 인연을 맺어온 애호가들의 소장품으로, 전시취지에 공감해 흔쾌히 대여했다.
유홍준 교수는 “조선시대 회화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전시는 논문 여러 편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미술사적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많은 이들이 전시를 관람해 옛 그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살아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28일까지. (02)733-5877
<사진설명= 현재 심사정의 ’화조도’ 32.3x23.8cm, 지본담채. 아래는 추사 김정희가 부채에 쓴 서예 작품. ‘평생 마음을 지키는 힘이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을 막지 못하네 세상살이 삼십년이 지나서야 공부한다는 것이 복임을 바로 알았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래는 윤제홍(尹濟弘)의 ’연강귀어(烟江歸漁)’, 30x35.4cm, 지본수묵(紙本水墨) 사진 제공=동산방화랑 >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