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미학적 실험을 통해 깊이와 외연을 동시에 확장하고 있는 작가 김숨의 세 번째 소설집. 잔혹함으로 특징지어진 전작 단편들의 이미지성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이 단단하다.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환상적 요소들에서 쓰디쓴 현실의 디테일로 내려온 점도 다르다.
간암에 걸린 화자와 담낭관에 생긴 담석으로 병들어 누운 그의 큰 누님의 이야기를 담은 ‘간과 쓸개’, 식당에서 장어를 잡아주는 일을 하는 아버지와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의 이야기 ‘모일 저녁’, 거동조차 자유롭지 않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북쪽 방에서 유폐되듯 갇혀 살아가는 노인의 하루가 그려진 ‘북쪽 방’ 등 필사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존재방식이 특유의 문체에 실려 무겁지 않으나 중첩된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간과 쓸개 ┃ 김숨 ┃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