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기념공연’ 준비하는 고려대 러시아 연극연구회…관록·패기·열정의 현장
‘ 7080기성무대’ 젖줄이던 대학연극대선배부터 신입생까지 의기투합
연극반 최초로 대학로 소극장 진출
후원금 모금도 30여년 세월 오롯이
“졸업후 다시 무대선다는 것이 기쁨
잊고지낸 작은꿈 실현에 가슴 벅차”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안암동 고려대 앞 삼겹살집에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연극반원들이 모였다. 류드밀라 라주모프스카야의 작품 ‘집으로’를 막 끝낸 뒤였다.
이들은 여느 연극 배우가 그러하듯,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시원섭섭함을 소주 한 잔에 토로했다.
이 아마추어 연극배우들은 연례 행사인 연극 공연 뒤풀이가 있던 이날 언제나 그랬듯 참살이길 근처 주점을 전전하다가 제기시장에서 오돌뼈와 닭똥집을 안주로 밤을 지새웠다.
때론 고참 선배의 선창에 따라 연극반가를 합창하며 숟가락으로 장단을 맞췄다. 뜨거운 밤이었다.
어느 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튿날 한숨 자고 일어난 ‘피래미’ 배우들의 가슴은 전날 술자리에서 어렴풋이 합의한 새로운 미션으로 콩닥거렸다.
“졸업한 선배들과 재학생들이 함께하는 3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해 보자.”
꿈은 함께하면 현실이 된다. 벌름거리는 가슴을 안고 ‘누가 먼저 얘기하나’ 서로를 지켜보기만 하던 이들에게 터닝포인트는 연말에 있었던 어느 ‘연극반’ 선배의 결혼식이었다. 이 자리에서 제 정신으로 모인 연극반 OB 선배들이 30주년 기념공연을 정식으로 논의했다. 이때도 서로 눈치를 보는 분위기였지만, ‘하자!’에는 변함이 없었다.
“공연은 3월에 한다.” 노문과 연극반 출신으로 SBS 드라마 ‘자이언트’, 영화 ‘글러브’ ‘7급공무원’ 외에 다수의 연극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이우진 선배(노어노문 90)가 일단 나섰다. 그가 30주년 연극 연출을 자임하자 89학번의 박재홍(중소기업 부장)과 이승은(프리랜서), 90학번의 김병철(코엑스몰 팀장)이 배우를 하겠다며 자원했다. 94학번 진동근(한국 IBM 과장)은 총 기획을 맡았고, 일이 커지자 회계사 겸 전통찻집 테이크아웃 프랜차이즈 회사를 창업해 동분서주하던 01학번의 이재승(독문과ㆍ노문반), 졸업을 앞두고 있는 06학번 나국호(노문과ㆍ노문반), 07학번 김성엽(서문과ㆍ노문반)도 바쁜 일정을 쪼개 배우로 합류했다. 또 노문반 연극반 10학번으로 지난해 공연에서 처음 ‘무대 맛’을 본 김지선ㆍ정지은(영문과ㆍ노문반), 이서영(노문과ㆍ노문반)도 다시 한 번 배우가 되기로 했다.
10학번 노문반으로 들어왔다가 2학년 때 전공으로 영문과를 택한 김지선은 “요즘 학교에서 한 학번 위 선배도 잘 모르고 지내는 게 일반적”이라며 “20년 위 선배인 90학번 선배님과도 오빠, 동생하며 지낼 수 있는 러시아 연극연구회는 제 대학생활 최고의 선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나중에 방송 PD가 되고 싶은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훈련 과정으로도 그만”이라며 “나중에 러시아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영화감독이 꿈인 06학번 강지수(영문과ㆍ노문반)와 카투사에서 복무 중인 08학번(노문과ㆍ노문반) 장재원은 지난해 연극 기획을 맡았다가 이번에 한 번 더하기로 했다. 이들의 목표는 공연 비용을 1200만원까지 벌어들이는 것.
주 수입원은 ‘연극반 선배님’들의 후원. 노어노문학과가 창설된 1974년 학번부터 최근 졸업한 2006학번 선배들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오르내리며 후원금 모금에 나섰다.
비용만 자체 수급하는 게 아니다. 30주년 기념 공연 대본인 러시아 작가 폰비진의 ‘미성년’은 연극반 84학번 오종우(성균관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1985년 3회 공연 연출을 맡아 직접 번역한 작품이다. 또 이 연극의 지도교수는 지난 1987년 5회 공연 ‘밑바닥에서’를 연출한 85학번 김진규(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다.
김진규 교수는 “재학 중에 5회 공연을 연출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지도교수가 되어 30주년을 맞게 되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끈끈이 이어져온 연극반의 전통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6시 땡’하면 퇴근해 연습 장소인 성북예술창작센터로 직행해도 연습 시작시간인 7시를 못 맞춘다며 머슥해하는 90학번 김병철은 “졸업 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무대가 그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요즘 다시 작은 꿈을 이뤄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고도 했다.
학과가 중심이 된 대학연극은 특히 70, 80년대 기성 연극계의 젖줄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기성연극계가 올리지 못하는 실험적이고 체제비판적이며 풍자적인 작품들을 끊임없이 올리며 문화예술활동 차원을 넘어선 시대의 증언자로서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학과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던 대학 연극은 학부제로 통합되면서 거의 사라졌다. 극회 동아리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노문과 연극반은 타과생에게도 문을 열고 계속 새로운 인력을 수혈받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학연극 시스템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30주년 기념공연 연출을 맡은 이우진은 “지난 1999년 학부제가 도입되면서 과 중심으로 추진하던 학회 모임이 모두 지지부진해졌다”며 “일종의 과 학회 활동 중 하나였던 각 학과의 연극반 활동도 대학 문화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노문과(반) 연극반이 그 명맥을 유지해 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30주년 기념 공연에 아낌없이 후원을 보내주는 모든 선배들의 마음은 옛 대학 문화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때문 일 것”이라고 했다.
이번 30주년 기념연극은 연극반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로 소극장에 오른다. 공연은 혜화동에 있는 190석 규모의 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3월 10~12일 3일간, 평일은 오후 8시, 토요일은 오후 3시와 7시에 시작한다. 입장권은 1만원에 판매한다. http://미성년.com
<김수한 기자 @soohank2> soohan@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정초영 PD가 말하는 연극반
“70년대 초연 새록새록
산경험 가득했던 그때
요즘엔 각박한 느낌만”
만나기로 한 늦은 저녁, 러시아 연극반 30주년 기념공연을 후배들과 준비하며 함께 삼겹살을 굽고 있는 정초영 KBS PD의 모습은 마치 금방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와 뒤풀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제 한평생을 보낸 직장 KBS에서 정년을 얼마 앞두고 다시 한 번 무대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고려대 노어노문학과가 창설된 1974년 1기로 입학한 74학번 정초영 PD는 동아리인 극예술연구회(일명 극회)에 가입해 연극 배우로 무대에 처음 올랐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쳤다. 이게 ‘나의 길’이다 싶었다.
당차고 똘망똘망해 보여 당시 교수님들의 이쁨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1975년 극회의 경험을 토대로 러시아어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어 연극반을 만들었다.
그는 열정 덩어리였다. 연출자는 당시 함께 고려대 극회 활동을 했던 국문과 72학번 이충향 선배를 초빙해왔다.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낭만적인 러시아 연극에 대한 호응은 뜨거웠다. 초연은 안톤 체홉의 ‘청혼’이라는 작품이었다.
학과 학생들도 저마다 배우 또는 스태프로 참가하며 힘을 보탰고, 공연 무대 막이 올라가자 공연장은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고려대 러시아연극연구회의 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초연을 마친 러시아 연극 공연은 1985년 2회 공연이 올라갈 때까지 10여년 동안 암흑 속에 묻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2회 공연을 시작해준 후배들이 고마운 거지. 그들이 다시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30주연 기념공연도 없는 거지.”
졸업을 앞둔 그는 연극 동아리 활동을 바탕으로 방송국 PD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방송 통폐합 전이던 그가 지원한 시험은 동아방송 PD직. 경쟁률이 50대1은 족히 넘었다.
그는 아직도 당시의 실무평가(?) 과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서울의 공기라는 주제로 5분짜리 라디오 방송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라고 했는데….” 서울 청계천 일대를 쏘다니며 사람들에게 묻고 녹음하기를 수차례. 대답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 상점 문을 열고 다짜고짜 들어가 마이크를 들이밀고 반강제로 녹음을 하기도 했다.
중간 중간 길 모퉁이에 서서는 녹음기에 대고 본인의 목소리로 내레이션도 집어넣었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그의 작품은 오히려 높게 평가받아 최종 합격자 4명 안에 들었다.
“당시 대학 방송국에서 일하던 한 응시자가 방송국 장비를 써서 과제를 깔끔하게 편집해 냈는데 떨어졌다지. 입사 시험에서는 젊은 정신과 패기를 봤던 것 같아.”
옛 얘기에 심취해 있던 후배들에게서 정 PD는 문득 취업난과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요즘 참 살기 힘들어졌지. 젊은 애들이 스펙 쌓기에만 골몰하고 산 경험을 도외시하지. 요즘 애들이 참 각박하지.”
그는 다시 그가 PD 생활 중에 좌충우돌하며 겪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문득 기억난 듯 너덜너덜해진 1975년 초연 당시 대본을 꺼내 후배들에게 건넸다. 후배들이 3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특별히 요청한 ‘문화재급’ 자료였다.
<김수한 기자 @soohank2> soohan@heraldcorp.com
포스터로 본 ‘러시아 연극반 발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