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조금은 다른 ‘죽음 기억하기’도 있다. 산 자에게 두려움이나 혐오, 경각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위로와 희망이 되는 죽음을 재생산하기다. 요사이 그러한 ‘죽음 기억하기’가 우리 사회에 크게 번지고 있다.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에서 의료봉사와 선교자로 살다 간 이태석 신부를 다룬 영화 ‘울지 마 톤즈’가 조용한 흥행몰이를 하며 40만 관객을 돌파했다. 상업영화가 아닌, 소규모 개봉으로 시작한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이다. 손수 벽돌을 구워 병원을 짓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학교를 꾸려나가는 모습, 가장 키가 크고 눈물 보이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는 딩카족 주민들이 그의 영정을 들고 음악을 연주하며 행진하는 모습은 진정한 사랑과 소통에 대해 숙연히 돌아보게 한다.
울림 가득한 가사를 절절한 목소리에 담아내 애틋한 사랑을 받아온 가수 고(故) 김광석은 15주기를 맞은 올해 더욱 추모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전국 5개 도시에 이어 지난 12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는 원주 등 전국적으로 이어진다. 영혼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요즘 판에 박은 가사와 현란한 몸짓으로 음악의 본질과는 멀어지는 세태에 대한 반작용이다.
서민들의 애환을 특별한 유머로 들려준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들은 낭독 공연으로 대학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며, 이달 말로 입적(入寂) 1주기를 맞는, 우리 사회 무소유 열풍을 일으킨 법정 스님이 기거했던 불일암, 길상사 등에는 상처 입은 마음의 치유를 원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죽음을 넘어 산 자들을 위로하는 이들 고인의 공통된 덕목은 인간적인 따뜻함과 소탈함, 나눔. 자신의 삶 자체로 다른 삶을 조건 없이 껴안거나 문학과 예술로 온기를 전해준 이들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이고 지나친 미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나친 미화보다는 고인의 실수 등 인간적인 면모도 함께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게 오히려 더 폭넓은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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