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격화되는 아랍권 민주화 시위가 18일 이슬람권의 금요기도회를 맞아 최대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17일 리비아에서 6명이 숨진 것을 비롯해 바레인에서 4명, 이라크에서 1명 등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대규모 인파가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운집하는 18일 각 국 반정부 시위대가 총력 투쟁을 결의하고 나서 유혈충돌 확대가 우려된다. 특히 이날 이슬람 혁명 32주년을 맞은 이란에서는 야당지도자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가 실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무사비 실종에 시위대 분노 고조=무사비의 딸들은 지난 15일부터 현재까지 부모에게 연락이 닿지 않고 있으며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칼레메(kaleme.com)에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가택연금된 것으로 알려진 칼레메가 이미 납치돼 제3의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야당지도자인 메흐디 카루비 전 국회의장도 16일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당국이 자신을 찾기 위해 장남의 집을 급습했다고 밝혀 집이 아닌 다른 피신처에 몸을 숨기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이란 의회 및 사법부에서는 이들 야당지도자들에 대해 신에 대항해 전쟁을 벌인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사형 집행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같은 당국의 강경 일변도 대응에 시위대의 분노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란 관영 IRINN 방송은 시위대가 18일 기도회 직후 대규모 집회를 열고 “테헤란 혁명가들의 분노와 열망을 보여주자”고 선포했다고 전했다. 이후 주말인 20일에도 무사비가 이끄는 반정부 운동가들이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어 사태 격화를 예고했다.
▶바레인 군부 수도 장악=17일 바레인 당국은 사태가 격화되자 계엄령을 선포하고 병력을 총동원해 사실상 수도 마나마를 장악했다. 군과 경찰은 이날 오전 3시 진주광장에서 시민들에 무차별 발포를 자행해 4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시위대는 시민들이 광장 천막에서 잠을 자는 사이 경고도 없이 집단 발포가 이뤄져 대규모 사상자가 났다고 분노했다. 당국은 부상자들의 병원 후송마저도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진은 당국이 앰뷸런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며 구급요원과 의사를 폭행했다고 털어놨다.
바레인에선 집권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의 소외감으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민생경제 악화로 촉발된 시위가 아니라 장기집권 체제에 대한 반발이 동력을 제공하는 시위인 만큼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의 산유부국들은 바레인 사태가 자국까지 확산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시위대의 죽음으로 페르시아만의 작은 나라 바레인은 분노에 휩싸이고 있다. 이날 진주광장에서 강제 해산된 시위대는 18일 다른 곳에서 대규모 시위를 진행한다는 방침이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아랍권 전역 시위 격화=무아마르 카다피의 철권통치가 42년간 계속된 리비아에서는 시위대가 17일을 ‘분노의 날’로 명명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보안군과 충돌해 지금까지 6명이 숨졌다고 야권 웹사이트 등이 전했다. 예멘에서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돼 지금까지 최소 4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에서도 17일 질 낮은 공공서비스와 높은 실업률에 항의하는 반정부시위가 잇따라 시위자 1명이 숨지고 적어도 30명이 부상하는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한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사퇴 이후 정권을 이양 받은 이집트 군부는 17일 다시 한 번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군 관계자가 카이로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군은 올 가을 대선에 후보자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군부의 쿠데타 우려를 일축했다고 전했다. 이집트에서는 18일 시민 혁명을 자축하는 ‘100만인 승리의 행진’이 예정된 가운데 친 무바라크 세력 역시 근처에서 집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집트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