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응집된 18일 간의 시민혁명은 ‘현대판 파라오’의 30년 절대권력을 무너뜨렸다. 지난 11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권력을 군에 넘겨주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향후 이집트의 민주화 개혁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포스트 무바라크’ 시대에 실권을 쥔 군부가 약속대로 민주화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지 권력을 잡으려 할지 불투명한 가운데, 현재로선 군부가 정치개혁을 주도해 정국 안정을 이끌었던 ‘인도네시아 식’ 개혁이 모범사례로 꼽힐 만하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화로 이행, 인도네시아 개혁=이집트 혁명은 1998년 수하르토의 30년 독재를 끝낸 인도네시아 혁명과 유사점이 많다. 이슬람 국가이자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이라는 점에다 양국 모두 혁명 당시 대통령이 재임기간 30년을 넘는 초장기 집권자였다.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이 군 사령관 출신으로, 권력 유지를 위해 군부와 정보기관에 크게 의존한 점도 닮았다. 13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수용한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고질적 청년실업으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한 이집트와 판박이다. 여기에 대규모 시위를 일으킬 조직적인 저항세력이 없었다는 점까지 닮았다.
특히 미국 내에선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이 카이로 혁명을 ‘강탈’해 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널리 퍼지면서 군부와 미국의 지지를 받은 과도정부과 야권과 협상을 통해 민주화의 길에 이르는 ‘인도네시아 식’ 개혁을 이집트 민주화의 모델로 강력히 밀어부치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주 미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이 외교 전문가들과 관련 논의를 하는 등 워싱턴 정가에 ‘인도네시아 혁명 공부하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14일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이 인도네시아 혁명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이집트에서 이슬람 세력과 군부 사이의 힘의 균형 문제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
결국 관심은 사태의 열쇠를 쥔 것으로 보인 군부의 행보와 향후 전개 양상까지 닮은 꼴이 될 것인지에 쏠린다. 그러나 이집트가 인도네시아가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는 최근 이집트 상황을 ‘로제타 혁명’으로 명명하면서, 고대 상형문자 해독의 길을 연 로제타스톤처럼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는 이전과는 판이한 새로운 혁명의 길을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군이 혼란을 빌미로 국정에 개입, 정치 전면에 나서는 ‘터키 식’ 개혁으로 향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군부 정권장악, 서울의 봄=최악의 시나리오로 꼽히는 군부의 정권 장악이 실현될 경우, 이집트는 인도네시아가 아닌 군부가 민주화의 요구를 묵살하고 집권하는 1980년대 ‘서울의 봄’으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의 봄 당시 한국은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민주화의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시민들은 최규하 대통령의 과도정부가 민주정부로 이행을 진행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사실상 정국을 주도했다. 이후 1980년 5월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가 단행되고 광주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으로 서울의 봄이 막을 내리면서 진정한 서울의 봄은 7년 뒤로 미뤄졌다.
서울의 봄은 이집트 혁명과 닮은 구석이 많다. 한국과 이집트 모두 미국의 지지를 받은 1인 장기집권체제였다. 또 최고통치자의 서거와 퇴진이란 갑작스런 상황변화와 함께 군부가 열쇠를 가졌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집트 군이 1980년 한국의 신군부처럼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정권을 잡을지는 예단키 어렵다. 다만 현재 이집트에서 군부가 신뢰를 받고 있고, 아랍권의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의 입장을 감안하면 군부가 민주화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정권을 잡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