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오는 9월 대선까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권력을 점진적으로 이양하겠다고 밝혀 퇴임 거부 의사를 재천명 했다. 시위대는 이에 즉각 반발해 대통령궁으로 행진하며 11일 대규모 투쟁을 예고해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밤 국영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헌법에 의거해 부통령에게 권력을 넘기기로 결정했다”면서 “기로에 놓인 위험 앞에서 국가적 이익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기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힌다”면서 “헌법의 5개 조항은 개정하고 1개 조항은 삭제할 것”이라고 종전의 공약을 재확인 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또 발효된 지 30년 된 비상계엄령 해제와 관련해 국가 안보상황이 안정되면 해제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폐지 시점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어 개혁 추진에 대한 미국의 압박과 관련해 그는 “나는 외세의 강권에 굴복한 적이 없다”면서 “언제나 평화를 수호했으며 이집트의 안정을 위해 일해 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집트군 최고위원회는 이날 최고 사령관인 무바라크 대통령이 불참한 가운데 회의를 연 뒤 국영 TV에 ‘코뮈니케1’이라 명명된 성명을 발표,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집트군은 성명에서 “시민의 정당한 요구를 지지한다”고 밝혀 한때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의 압력 속에 퇴임을 결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무바라크 대통령의 공식 사임 순간을 기리기 위해 광장에 모인 수십 만의 시위대는 대국민 연설 직후 “무바라크는 떠나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노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 귀가를 촉구했지만 시위대는 11일을 ‘분노의 날’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파업과 함께 ‘100만인 항의 시위’를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제사회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 거부에 실망감을 표출하며 신속한 변화를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이집트 국민들은 권력 이양 발표를 들었으나 변화가 즉각적이고 의미 있고 충분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면서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민주주의로의 진실한 이행에 뜻이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집트 정부가 탄압이나 무자비함 등에 기대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에 반대했다. 유럽연합(EU)의 캐서린 애슈턴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성명에서 “이집트 정부의 변화를 이뤄내야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했고,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도 이집트 정부의 시급하고 질서있는 변화를 촉구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