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을 ‘분노의 날’로 선포한다” 10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에 귀를 기울이던 수십 만 명의 희망은 이내 울분으로 바뀌었다.
이날 연설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것이란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이를 축하하려는 20만명의 인파가 광장에 몰리면서 축제 분위기가 짙었다. 일부 외신들은 광장에 모인 인파를 많게는 10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광장 연단에선 결혼식이 진행됐고 대로로 쏟아져 나온 차량은 승리의 경적을 울렸다.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임기유지를 재천명 하는 순간 시민들은 신발을 집어던졌고 군중 사이에선 “저들이 우리를 바보로 안다”, “무바라크, 술레이만 둘 다 안 된다”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연설 직후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시위대에 귀가를 촉구했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수백만의 순교자가 대통령 궁으로 향한다”는 외침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CNN은 이미 시위대 수천 명이 대통령 궁으로 향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다른 시위대는 광장 인근의 국영 TV 및 라디오 방송국 건물까지 행진했다. 일부 시민들은 광장 주변을 둘러싼 군대를 향해 “이집트 군은 정권 편인지 시민 편인지 선택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광장에 나온 에이먼 셔키(32ㆍ회계사)는 “무바라크는 위엄을 잃지 않고 권좌를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며 그의 퇴진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광장에 나온 많은 시민들은 자정을 넘긴 11일 새벽 현재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날 낮에 있을 ‘100만인 항의 시위’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특히 무슬림의 금요기도회가 열리는 이날 시위에는 전국적인 노동파업까지 예고된 가운데 정부가 강경진압을 시사하면서 대규모 무력충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현재까지 300여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가 속출한 가운데 지난달 25일 시위 발발 이후 최대 규모가 될 이날 시위를 앞두고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이날 연설 직후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도 분노와 좌절이 교차했다. 자신을 교사라고 밝힌 이스마일 자카리아는 “내일 대통령궁 시위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고 “무바라크의 마지막 술수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몰아가는 것” 등 격분한 시민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일부에선 군부 정권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야권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이집트는 폭발할 것”이라며 “군대가 지금 나라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 최대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의 헬미 알-가자르도 “무바라크가 국민들의 의지를 무시하고 있다”면서 “그의 연설은 절망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