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개각발표도 이집트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울 수 없었다. 이집트 사태가 7일째로 접어드는 지난 31일(현지시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내무장관과 재무장관 등을 교체하는 일부 개각을 발표했으나, 시위대는 무바라크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중심부 타흐리르 광장에는 “현 체제의 퇴진을 원한다”는 수천 명의 외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시위대가 1일 대규모 시위 및 총파업을 선포해 사태 격화를 예고했다.
▶민주화 성지 된 타흐리르 광장=이날 광장엔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모였다. 일부는 지난주 경찰과의 격렬한 무력 대치 속에 얼굴과 팔 등에 부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이들은 아랍 전통 북소리에 맞춰 서로 “마브룩(축하)”이란 인사를 나누며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아버지와 함께 시위에 참가한 아메드 사미(16)는 AP통신에 “정의와 민주주의가 있는 곳에서 살며 내 손으로 국회를 선택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세 살배기 아들을 안은 파리다 자와드(43ㆍ교사)는 “역사적인 현장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무바라크 얼굴에 콧수염을 붙여 독재자 히틀러처럼 꾸민 사진을 들고 시위에 나섰고, 일부는 바닥에 “겁쟁이들은 가라. 우리는 광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글을 썼다. 손톱에 총알모양을 그리고 나온 가말 후세인(54)은 양 손을 들고 “이 총알은 내무부를 향한 것”이라고 외쳤다. 이집트 민주화 성지로 거듭난 타흐리르 광장엔 ‘자유의 숙소’ 등으로 이름 붙여진 텐트들 몇 개가 세워졌다. 시위대 1500명은 이곳에 남아 밤새 광장을 지켰다. 한 사업가는 스쿠터로 시위대에 이집트 전통 음식인 ‘코셰리’를 부지런히 날랐다.
시위대들은 광장에서 자신들이 꿈꾸는 ‘소우주’가 구현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라 세랑-엘딘(27)은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시위대를 가리키며 “사람들이 달라졌다, 완전히 변했다”고 말했다. 1일 ‘백만인 행진’ 시위에 이어 4일 무슬림 기도회를 계기로 대규모 집회가 예고된 가운데 정부에 의해 차단된 휴대전화와 인터넷 대신 집전화와 입소문이 시위대의 계획을 알리는 주요 도구가 되고 있다. 지난주 말부터 경찰 대신 군대가 광장의 치안을 유지하면서 시위는 무력없이 비교적 평화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식량난 속 사재기 극심=시위가 격화되면서 식량난과 연로난이 심해지는 등 도시기능도 마비가 되고 있다. 이날 카이로의 한 식료품점에 냉동 닭고기와 우유 등을 사러 나온 젊은 부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대부분에선 식료품 사재기 현상이 극심해 물과 빵 등 일부 품목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 특히 물은 정상가에 세 배가량 비싼 가격으로 팔리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와 상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대중교통도 거의 마비 상태다.
도시 곳곳에서는 치안 공백을 틈 탄 약탈행위도 빈번해지고 있다. 갱들은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은 물론 교외 중산층 아파트와 고급 주택을 터는 등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한 시민은 “5000명이 넘는 범죄자들이 탈옥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면서 “현금지급기에 돈이 하나도 없다”고 전했다. 일부에선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방범대를 구성해 치안을 맡고 있다. 주부인 나글라 마흐메드(37)는 “남편과 남동생이 몽둥이를 들고 밤새 집 밖을 지키고 있다”면서 “밤새 총소리 때문에 아이들이 한 잠도 못잤다”고 전했다.
▶외국인 탈출 러시 이어져=사태가 격화되면서 외국인들의 이집트 탈출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날 카이로 국제공항에는 특별기에 탑승하려는 외국인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혼잡을 빚었다. 일부 승객들 사이에선 큰 소리로 말다툼과 몸싸움이 일어났고 급증한 업무를 처리할 직원들마저 부족해 혼란은 가중됐다. 이날 정오까지 미국과 덴마크, 독일, 중국, 영국, 캐나다, 포르투갈, 아제르바이잔 등이 자국민의 철수를 돕기 위해 특별기를 보냈다. 호주와 일본도 전세기를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