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째 반(反)정부 시위로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이집트의 미래는 세사람의 행보와 직결된다. 30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통령으로 임명된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부장과 야권의 기수로 떠오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이집트 위기 정국의 ‘키 플레이어(Key players)’로 꼽았다. 이들 뿐만 아니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 여부도 정국의 핵이 될 전망이다.
▶美 술레이만 지지?=시위대의 퇴진 압박을 받은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 29일 술레이만을 부통령으로 내세워 무마에 나섰다. 정보기관 출신인 술레이만은 지난 1995년 에디오피아 방문 당시 무바라크를 암살 위기에서 구한 이후 상승 가도를 달리며 2인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스마트한 협상가로 꼽히는 술레이만은 최근 이스라엘 및 중동 국가들의 평화 협상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술레이만의 임명에는 이집트의 급격한 변화를 막고 조용히 사태를 수습하려는 미국의 의중이 담겨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전직 CIA 분석가 데이비드 맥미셸을 인용 “술레이만은 수년 간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인물”이라며 그의 임명은 미국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지난주초 사미 아난 군참모총장과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이 미국을 방문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집트 군부가 미국 국방부와 다음 조치를 협의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 1952년 왕정을 뒤엎은 쿠데타 이후 집권한 4명의 대통령은 모두 군장성 출신일 정도로 이집트 군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야권 및 시위대는 술레이만도 무바라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며 그를 거부하고 있다. 이집트 군중들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나 술레이만이나 미국의 앞잡이”라고 외쳤다.
이와관련 FT는 미국은 유혈사태 확대와 무슬림 형제단의 집권 등 두가지 최악의 시나리오만 피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CNN방송 등에서 부통령 임명 등 무바라크의 조치가 불충분하다면서도 “이집트가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엘바라데이, 야권 결집하나?=한편 시위대로부터 정부와의 협상 중재자로 선임된 엘바라데이는 30일 시위현장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엘바라데이는 무바라크 대통령을 향해 “즉각 이집트를 떠나라”고 촉구했다. 그는 곧 군부와 만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30년 이상 해외에서 떠돈 사람이 이집트 사정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그의 역할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해 귀국해 이집트 정치 개혁을 시도했던 엘바라데이는 힘없고 사분오열된 야당 등 한계를 깨닫고 다시 해외로 떠났다. 최근 이집트 반정부 시위 사태를 계기로 다시 돌아온 그가 야권을 결집하고 시위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무바라크 퇴진?=한편 거세지는 시위의 불길에도 무바라크 대통령은 퇴진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LA타임스는 전직 고위 관료를 인용 “오바마 행정부 내부에서는 무바라크가 버틸 수 없을 것으로 보고 포스트 무바라크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 인터넷판은 술레이만 부통령과 탄타위 국방장관이 현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권력 이양이 불가피하다며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BBC방송은 무바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쫓겨난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기로 결심했다며 미국도 권력 공백이 생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 이를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이와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이집트 군부가 무바라크를 보호하는 한편 시위대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등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무바라크는 홍해 연안의 휴양지 샤름-엘 셰이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군은 이 지역을 포위하고 있다. 이같은 군의 움직임에 대해 시위대는 “군은 이집트와 무바라크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