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민주화 시위 격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졌다.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등지자니 중동지역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인 이집트를 잃을 게 뻔하고 껴앉자니 민주화를 옹호하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자 주말인 29일(현지시간)에도 상황을 실시간 주시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일단 오바마 행정부는 이집트 정부를 향해 민주화 개혁 조치를 압박하는 입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 내각 총사퇴와 일정한 개혁조치 카드를 내놓은 무바라크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시위대를 유혈 진압해서는 안되며 개혁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집트 국민들의 권리 편에 설 것”이라고 언급하는 한편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응 방향을 지켜보면서 연간 15억달러에 달하는 이집트 원조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압박카드도 내보였다.
하지만 이같은 미 행정부의 입장은 ‘무바라크 체제 내에서의 개혁조치’이며 ‘개혁의 주체도 무바라크 대통령’으로 상정돼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는 이집트의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을 추구하는 친미(親美) 정부 존속을 불투명하게 하고, 중동의 안보 정세를 안갯속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미국에게 있어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나 아랍권 내 이슬람 극단주의 차단을 돕는 강력한 동맹이었던 만큼 ‘포스트 무바라크’가 누가 되는 미국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내에서도 ‘무바라크를 버리라’, ‘무바라크를 안고 가라’는 여론이 교차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 사설에서 무바라크 대통령과 민주화 시위대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은 비현실적이라며 무바라크 대통령에 개혁 이행을 촉구할 게 아니라 야당 세력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무바라크 통치 하에서의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위한 중개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며 “누구도 미국이 정권교체를 옹호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며 반정부 세력 지원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