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2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러시아 도모데도보 공항 폭발이 자살폭탄 테러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러시아 수사 당국은 테러범의 신원과 배후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국이 이번 테러의 배후로 이슬람 과격 단체와 체첸 반군을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여 년 간 수많은 살상을 부른 러시아의 소수민족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수사위원회 블라디비르 마킨 대변인은 “테러범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테러범은 벨트에 폭발물을 매달고 국제선 대합실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에 밝혔다. 이날 사고현장에서는 테러범으로 추정되는 30대 아랍계 남성의 시신 일부(머리)가 발견됐다. 보안 당국은 이 남성이 북(北) 캅카스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북캅카스는 러시아 남부의 이슬람 문화권 지역으로 체첸 반군과 공조 하에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번 자살폭탄 테러의 배후 역시 이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영국 군사정보회사인 IHS 제인스의 매튜 클레멘트는 “이번 공격은 북캅카스 인근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 반군의 소행임이 틀림없다”면서 “러시아의 캅카스 정책의 명백한 실패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세르게이 마르코프 의원도 자국의 소수민족 정책을 비난하면서 “이제 이슬람 과격 단체마저 우리의 적이 됐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모스크바 지하철역 등에서 소수민족들에 폭력을 행사한 데 대한 반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간 반군들은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고 공언해 왔고 지난해 3월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 후 1년도 안 돼 이를 실행에 옮겼다.
전문가들은 테러범들이 희생자 수를 늘리기 위해 공항 입국 대합실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보안 분석가인 윌 게데스는 CNN에 “입국 대합실은 여행객들과 마중나온 친지들 등으로 인파가 집중된 곳”이라면서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한 데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테러가 일어나면 대규모 사상자가 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 입국 대합실의 보안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될 것이라고 CNN은 내다봤다.
또한 이번 테러로 러시아 보안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2014년 동계올림픽과 2018년 월드컵을 유치한 러시아의 안전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일대 공항과 주요 운송시설의 보안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이번 테러가 외국인들이 드나드는 공항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향후 러시아의 외국기업 투자유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