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방송ㆍ문화계로 확산되고 있다.
EBS의 ‘하버드 특강 - 정의’는 자정에 가까운 방송 시간에도 평소의 2배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수 김장훈, 배우 현빈 등이 던지는 정의에 대한 나름의 답변도 신년 밥상머리를 달구는 최고의 화젯거리다.
지난 3일부터 4주간 총 12회 ‘정의’ 시리즈를 방송하는 EBS는 첫 방송이 나간 지 48시간 만에 방영 시간을 1시간 앞당겼다. 당초 자정 무렵의 편성 시간이 너무 늦다는 불만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11시 10분으로 편성시간을 바꾸자마자 시청률은 1.5~2%까지 뛰었다.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볼 수 있는 담당 PD의 트위터는 첫 방송이 끝난지 하루 만에 팔로워가 2배 이상 급증했다.
‘하버드 특강 - 정의’를 기획ㆍ연출한 권혁미 PD는 “평소 밤 10시대에는 40~50대 남성 시청층이 두터운 편인데 ‘정의’ 시리즈는 30대 여성을 포함한 시청자들이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교양 프로그램이 평소 절실히 필요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EBS는 ‘정의’ 시리즈의 재방송을 전격 편성했고 DVD도 출시할 계획이다.
서점가에서 방송가로 넘어온 정의에 대한 물음표는 가수ㆍ배우 등 대중문화 인사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가수 김장훈은 18일 서울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제 1회 고교생 정의 캠프’에서 나눔의 정의에 대해 답을 내놨다. 그는“내가 1조원을 낸다고 해서 소외계층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천원을 아진 사람이 1천원을 가진 사람에게, 1천원을 가진 사람은 5백원을 가진 자에게 나눠주는 세상이 궁극적인 이상”이라고 밝혔다. 벤담과 로크, 칸트를 언급하지 않아도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할 수 있는 정의 세상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그는 확신했다.
최근 화제가 된 배우 현빈의 해병대 입대도 일각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와 맞물려 해석하고 있다. 청문회마다 터져나오는 정치인들의 병역 비리,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에 신물이 난 대중은 드라마 ‘시크릿가든’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그의 해병대 자원 입대를 신선하게 바라봤다. 이번 이슈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반면 병역 부문의 ‘정의’를 공적 담론에 올려놨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실력 위주의 공정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대중의 심리는 올해도 오디션 열풍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허각, 존박, 장재인 등의 스타를 배출한 ‘슈퍼스타K’에 이어 MBC와 SBS 등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연달아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뛰어난 외모와 연줄을 통해 알음알음 들어가던 일명 ‘연예인 고시(유명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는 이제 전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한치의 비리와 심사 오류도 허락하지 않는 오디션 무대로 탈바꿈 중이다.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는 대중문화계에 불고 있는 정의 열풍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과거 국내 독서 대중의 관심은 돈이었다. 관심사에서 벗어났던 ‘정의’라는 개념이 공적인 장에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면서 “책 한권과 방송 한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가 부정의하다는 것에 대한 반성, 인문서에 대한 장벽 낮추기, 정의에 대한 대중적인 고찰이 서서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