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 마케팅 폐해 우려
사설 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에 한국교육개발원의 등록상표인 ‘EBS’를 표시해도 상표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교재에 찍힌 ‘EBS’가 출처를 나타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한국교육방송의 방송강의 교재로 사용됐다는 걸 안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입시교재를 발매하는 출판사와 학원이 EBS의 공신력을 이용해 교재에 무분별하게 ‘EBS’ 표장을 넣고 학부모와 입시생을 유인하는 판촉마케팅에 활용할 가능성 있어 교육당국은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학원 교재 표지에 EBS 표시를 임의로 부착한 혐의(상표법 위반)로 기소된 학원장 김모(45)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교육방송에서 강의를 했던 전력이 있는 김 씨는 2007년 2월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자신이 발행한 쓰기·어휘 관련 교재에 ‘EBS’ 등록상표를 부착해 150부를 수강생에게 배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타인의 등록상표를 이용했더라도 상표의 본질적 기능인 출처표시를 위한 게 아니라 책 내용 등을 안내·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등 상표의 사용으로 인식될 수 없는 경우엔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김 씨가 낸 교재의 앞표지와 세로표지 등에 ‘EBS’ 표장이 붙어있긴 하지만 학원이름과 주소 등이 함께 기재돼 있고 책의 각 페이지마다 김 씨의 영문이름이 적혀 있는 등 책의 출처가 김 씨가 운영하는 학원임이 명확하고, 책의 내용이 김 씨가 EBS에서 방송강의를 하며 사용한 것이라는 점도 첫 페이지에서 밝히고 있어 학원 수강생들에게만 배포할 의도에서 ‘EBS’ 표장을 사용한 걸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당국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빌미로 사교육 업계에서 교재 제목에 ‘EBS 교재 심화학습’ 등의 명목으로 ‘억지 교재’를 양산해 학생들을 현혹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김 씨에 대한 판결은 그가 교육방송에서 강의를 했고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해 학원생들에게 나눠주는 등 특별한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안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무분별하게 ‘EBS’ 표식을 교재에 찍어 파는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단속을 벌이는 한편 문제가 발생할 경우 EBS 법무팀과 상의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홍성원ㆍ신상윤 기자/ hon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