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산층의 부(富ㆍ재산형성)의 방정식이 바뀌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서구 경제가 위축됨에 따라 이 지역 중산층들의 여유자금 투자 지역이 아시아로 다변화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자금이 풍부해진 아시아 지역 중산층들은 가치가 급락한 서구 자산들을 게걸스럽게 사들이고 있다.
이제까지 투자은행 등 기관투자자들이 주로 글로벌 투자행태를 보여줬지만 이제는 글로벌 중산층도 글로벌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
금융불안 여파로 글로벌 중산층의 투자성향은 높은 수익률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방점이 잡혀 있었고 자산관리의 주 목적은 단기적인 수익 창출보다는 노후 대비 등 생애관리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기 시작하는 한국도 더 장기적 측면의 자산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중산층의 변화와 그들의 자산관리 트렌드를 보기 위해 미국ㆍ영국ㆍ싱가포르 현지 취재를 펼친 결과, 중산층들의 자금운용이 세계적(worldwide)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서구의 막강한 돈이 아시아로 쏠리는 동진(東進)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미국 금융그룹인 BNY멜론인터내셔널의 피터 모어틀 자산관리(WM)부문 헤드는 “선진국들은 브릭스나 아시아 신흥시장에 비해 경제회복이나 부의 성장이 현저히 느려지면서 전 세계 자산관리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유동성이 아시아 신흥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은 물론 이 지역 중산층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셰인 넬슨 스탠더드차터드 글로벌헤드는 “특히 중국을 비롯해 신흥 아시아 시장에서의 부의 성장 속도가 폭발적”이라며 “글로벌 금융기관에는 투자처로서의 매력 못지않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삐 풀린 선진국 유동성에 따라 주머니 사정이 좋아진 아시아 중산층의 경우 과거 재테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부동산 자산(또는 일반 예금)의 성장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산층의 입장에서 보면 금융위기 이후 투자기회를 노리는 것 못지않게 리스크 관리도 엄격해졌다.
2011년은 풀린 유동성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산을 지켜야 하는 것이 절대 과제로 떠올랐다.
영국 현지 금융기관의 한 수석PB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대비 초과수익보다는 시장이 흔들리더라도 절대수익률을 추구하는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졌다”며 “펀드라고 해도 대부분 인덱스를 따라가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랩어카운트 열풍이 거세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이미 한 차례 유행이 지나간 상품이다. 2000년대 초반까진 지금 한국처럼 큰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는 규제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열기가 식었다.
펀드나 다른 금융상품과 비교했을 때 랩 상품은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 시작됐다. 한국도 이제 자산관리에 있어 장기적인 라이프케어(생애계획)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란 조언이 많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자산관리의 목적 자체가 지난 2009년 말 기준 미국은 노후대책 마련이 76%로 절대 1위를 차지했지만, 아시아는 아직까지 종잣돈을 마련해 보겠다는 이들이 지배적이다.
모어틀 BNY멜론 헤드는 “어느 국가 투자자들을 불문하고 앞으로는 자산관리에 있어 이전 50년과 같은 수익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자신의 대출과 세제, 상속 등을 고려한 단기ㆍ장기 목적에 따라 자산관리에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찍부터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지목된 싱가포르는 자산관리 부문에서는 한발 앞서 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트러스트(Trust)’라는 서비스가 발달해 있다. 은행에 전 재산을 위임하되 실제 자산관리나 상속 등의 권한은 본인이 그대로 갖는 방식으로 자신뿐 아니라 대를 이어 자산관리 계획을 짤 수 있다.
hu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