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박명수는 재활의학과 교수의 삶을 살았고, 짜여진 일상의 의사는 ‘무한도전’을 통해 일상 탈출을 했다. 백화점 사장 김주원(현빈)은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의 삶을 살았고, 소외계층은 사회 지도층의 삶을 체험했다. 앞서 통일 이전의 독일 시대에 살던 비밀경찰은 극작가와 배우의 삶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켰던 사례가 있다. 타인의 삶을 엿보거나 타인의 삶을 대신 살게 되는 동안 우리에겐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 생긴다. 드라마와 예능에서 이를 짚었다. 각기 다른 코드였으나 감동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다.
▶ 영화 ‘타인의 삶(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동독의 국가보안부 '스타지'로 불리는 비밀경찰은 한 부부를 감시해야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들의 목표는 ‘모든 것을 아는 것’. 프롤레타리아를 존속케하는 이 사회의 철저한 복종자가 바로 비즐러다. 비즐러는 동시대를 사는 반정부주의자이며 자유주의자 시인과 배우인 그의 아내, 그들을 감시한다.
프롤레타리아 사회의 독일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난다. 모든 감정은 철저하게 거세했다. 때문에 시선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 오로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나 ‘타인의 삶’은 이 남자를 움직인다. 무겁지 않은 관악기와 차분한 현의 조화로 이뤄진 비밀경찰과 부부의 첫 만남, 통제와 감시라는 이름 아래였으나 이제 한 사람의 삶은 타인들로 인해 변화한다.
자유는 억압된 삶, 그럼에도 통제된 세계 안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 신성한 권력 안에서도 자유의지가 충만하며 흔들리지 않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감시하며, 그것은 급기야 ‘훔쳐보기’에 달하며 이 냉정하고 무색무취한 남자의 삶이 달라진다. 비인간적이고 조악하며 때로는 졸렬하고 극악한 세계였다. 그 세계로 침범하는 타인들의 세계,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를 살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남자의 미소는 ‘타인의 삶’ 속 절정의 감동이다.
▶ ‘무한도전’의 ‘타인의 삶’=개그맨 박명수와 마흔두살의 동갑내기 의사는 서로의 삶을 단 하루 바꿔살게 됐다. 무려 437대1의 경쟁률을 뚫은 주인공은 재활의학과 의사였다. 박명수는 덕분에 흰 가운을 입고 방송국 대신 병원으로 출근했다. 매니저의 옆자리에서 호통을 치는 대신 직접 운전대를 잡고 의사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며 시작한 하루였다.
순탄치는 않았다. 한 시간 가량 회의 시간에 늦은 탓에 처음이자 마지막 출근인 아침 회의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이내 부드러워지기는 했다. 그래도 ‘깨알웃음’ 박명수 아닌가. 이제 그는 의사의 삶 속에 있다.
그럴 때 박명수의 삶 속으로 들어간 의사는 처음부터 당황했다. 하얀 가운이 더 어울리던 삶이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돌보던 의사였다. 한 번도 ‘버럭’이나 ‘호통’ 같은 것을 내지른 적이 없던 이가 박명수로 살아야 했다. 난관은 있었으나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참가자의 희망에 이날의 '무한도전'은 ‘마봉춘 시절’로 돌아갔다. 369와 아하 게임을 하고 쌍박송이 울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절의 ‘쌍박’ 송 대신 오리지널 ‘쌈바(Samba De Janeiro)’ 송이 퍼졌다.
그 때 박명수는 회진을 돌았다.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의학용어에 박명수의 의식은 잠시 ‘안드로메다’로 향하기도 했으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본의 아닌 난관도 만났다. 유난히 잘 웃은 소녀에게 잘 생겼다는 칭찬은 눈물로 되돌아왔다. 호통만 치던 박명수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소녀와의 재회는 박명수가 선물을 건네러 갔을 때였다. 무뚝뚝하고 호통만 내지르던 박명수는 의학용어는 익숙하지 않을지언정 어느새 마음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됐다. 잘 웃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하던 박명수,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내일’도 약속했다. ’타인의 삶’ 속에 들어간 박명수는 ‘무한도전’에서의 ‘악마’ 박명수, ‘무한 이기주의’ 박명수가 아닌 '인간' 박명수의 모습을 보여줬다.
▶ ‘시크릿가든’의 ‘타인의 삶’=‘시크릿가든’의 ‘시크릿’ 코드는 영혼이 바뀌는 것이었다. 백화점 사장 주원(현빈)과 스턴트우먼 라임(하지원)은 같은 하늘 아래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마법에 걸린 듯 서로의 몸이 바뀐다.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영혼 체인지를 통해 이들은 서로의 삶을 살아본다.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타인의 삶’을 통해 이들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서로의 삶을 다시 들여다 본다.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재벌 2세의 삶 안에는 버티며 지켜야 하는 자리의 외로움이 있고, 1 대 다수로 부딪혀야 하는 녹록치 않은 현실들이 있다. 청테이프가 붙어있는 옥탑방 한 칸이 집인 스턴트우먼의 삶에는 스타킹 안에 비누조각을 넣어 아껴써야 할 만큼의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그럼에도 이 여자는 참 꿋꿋하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면 서로의 자리와 서로의 이야기가 보인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의 삶이 나의 것보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이든, 나의 것보다 더 졸렬하고 비루한 삶이든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예능은 어느 편에서든 긍정적인 해답을 준다. 이제 ‘타인의 삶’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단 하루 타인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의 삶이 아닌 누구를 통해 무엇을 알고 싶냐"고.
<고승희 기자 @seunghe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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