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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 vs 현실...영화 속 유전자 복제의 역사
인류 최초의 복제 원숭이 ‘테트라’는 11년전 1월 14일 태어났다. 현실에서 ‘영장류’ 복제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일란성 쌍둥이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배아 분할을 이용해 어미 동물에 이식하니 ‘테트라’가 태어나게 됐다. 암컷 원숭이였다. 이 원숭이의 이름이 테트라인 것은 연구자들의 실험에서 4개의 배아 중 3개는 살아남지 못하고 네번째 배아는 157일만에 원숭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4분의 1’의 확률, 귀한 이름이었다.

최초의 포유동물 복제 사례였던 돌리(1996)로 시작한 유전자 복제는 복제송아지 영롱이(1999), 동물 복제의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복제개 스너피(2005)를 거치며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이 생명공학을 통해 인류는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곳에는 늘 윤리적 문제가 겹겹이 덧대여있었다.

현실에서의 유전자 복제가 윤리적 논란 속에서 시간을 쌓아갈 동안 영화는 이보다 늘 한 발 앞섰다. 그 안에는 인간과 동물의 융합(‘닥터 모로의 DNA’)도 있었고, 복제인간끼리의 싸움(‘저지 드레드’)도 있었으며, 폐쇄된 공간 안에서 만난 복제인간들의 자기애(‘더 문’)를 다루기도 했다. 복제인간이지만 처절하게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한 애절한 질주(‘아일랜드’)도 있었고, 아주 노골적인 ’복제인간’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었다. 아픈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에 대한 것과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논하며 파멸을 몰고 오는 경우는 대다수였다.

1933년작 ‘닥터 모로의 DNA’는 기괴했다. 인간과 동물을 결합시켜 외딴 섬으로 격리했다. 모로 박사는 영화 속 인간으로서 가능한 유전자 접합 실험의 모든 것을 선보인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은 사람도 짐승도 아닌 비스트 맨(Beast Man)이었다. 야심에 찬 박사는 새로운 생명체로 인류를 재창조하려는 야욕을 품었으나 영화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인간에게 ‘파멸’을 벌한다. 이 영화는 이후 1977년, 1996년 두 번의 리메이크 과정을 거치며 유전자 복제 영화의 신호탄을 알린다.

영화가 유전자 복제를 말할 때에는 윤리적 문제가 뒤따라왔다. 이는 호박 속에서 1억 3000만년 전의 공룡피를 빨아먹은 모기를 통해 복원한 공룡들의 ’섬뜩한 악몽’을 담은 ‘주라기 공원’으로 촉발된 유전자 복제에 대한 관심과는 또 다르다. 

‘가타카’는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난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소룡의 노란 트레이닝복(‘킬 빌’)을 입었던 우마 서먼은 이보다 앞서 유리처럼 투명한 피부와 푸른 눈의 신비를 테크놀로지의 세계에 담았다. 이 영화는 일종의 거래였다. 우성 유전자의 조합으로 태어난 인간, 열성 유전자의 조합이 만들어낸 인간, 이를 통해 유전자를 거래하는 또다른 차원의 윤리성을 보여줬다.

‘가타카’를 넘어 ‘아일랜드’에 와서는 유전자 조합과 인간 복제의 윤리적 문제라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어쨌거나 인간의 불로장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이 자아를 인식하는 것은 흡사 인조인간으로 대표되는 ‘A.I.’류의 영화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에서 ‘인간성’에 대한 명제가 제시된다.

그에 앞서 ‘6번째 날’도 있었다. 영화는 인간의 입장에서 참으로 기막힌 설정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영생을 위해 복제인간을 만든다.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는 이렇게 말한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인간을 향한 클론의 공격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철저하게 통제된 희망의 땅에서 살아가는 선택받은 자들도 있다. 이들의 세상은 인간들은 모르는 유토피아, 하지만 이 곳은 복제인간이면서도 자신들이 복제인간인 줄을 모르는 이들의 세계다. ‘아일랜드’의 복제인간들은 자기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 살아남기 위한 질주를 시작한다.

기꺼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인간의 생명공학은 영화를 통해 구체화됐다.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 ’생명의 마법’은 영화 안에서 윤리를 넘고 상상을 넘었다. 이제 재미는 중요치 않았다. ’꿈’으로 키워진 이야깃거리가 안고 가야할 윤리 영역의 담은 높았다. 이제 겨우 11년의 시간을 쌓은 영장류 유전자 복제는 이미 오래전 영화 안에서 인간의 양면성으로 치환됐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영생에 대한 갈망은 인간성 상실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렸으며 이는 시종일관 어두운 색으로 칠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끝모를 유전자 복제의 세계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다. 2월 개봉할 키이라 나이틀리의 ’네버 렛 미 고’도 이의 연장선이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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