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대외의존도 큰 걸림돌로
농식품 분야 공급물량 확대 무게
공공요금 동결…재정부담 불가피
예상수준 그쳐 실효성은 ‘미지수’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25% 인상하면서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이 비로소 힘을 받게 됐다. 지난해 12월 7일 이후 딱 37일 만에 정부는 또 물가 대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실효성이 지극히 의심되는 내용들이란 점이다. 원자재와 농수산물 가격의 급등세가 공공요금과 서비스요금의 상승 압력으로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과거와 같이 ‘오르지 않은 부분을 눌러서’ 물가상승률만 억제하는 방식으로는 이제는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을 통해 총수요 압력의 단추를 풀면서 정부의 의지가 강력하게 반영됐다. 물가 대책이 금통위가 열리는 날 함께 발표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모두 들고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물가에 대한 정부의 위기감은 깊어졌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최근 공급 부문에서 충격이 오면서 그대로 놔둘 경우 물가를 정부 전망치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봤다”면서 “분야별 미시 대책을 추진할 경우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 가능할 것”이라고 이번 대책의 배경을 설명했다. 미시적 부분까지 총체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를 감안할 때 이번 고물가의 파고를 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세계 식량 가격이 사상 최고로 뛰었고, 유가도 불안하다”며 “한국은 원자재에 대한 대외의존도가 높은데, 단순히 정부가 목표를 몇 퍼센트 잡았다고 해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봤다.
정부는 13일 전세난 해소를 위한 부동산 대책과 함께 서민물가 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같은 날 금통위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윤증현 재정경제부 장관이 정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
지난해부터 물가 불안의 중심이 돼버린 농식품 분야 대책의 경우 새로운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비축물량 방출, 농업 관측 강화 및 계약 재배 강화, 가격정보 공개 확대 등은 지난해 먹을거리 파동 때도 등장했던 메뉴다.
기상이변, 구제역 등으로 농수축산물 가격의 총체적 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제품의 단기 공급물량 확대가 물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더구나 지난해 하반기 세계를 휩쓸었던 국제 곡물 가격의 초강세가 4~7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보여 더욱 부담스럽다.
전기, 가스료 등 공공요금 역시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2년간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에너지 공공기관들은 이미 상당한 재정 부담을 안고 있다. 애당초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려고 했을 정도다. 국제유가가 다시금 9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요금 현실화를 마냥 미뤄둘 수는 없다.
교육비 분야에서는 정부가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내놓으면서 등록금 동결을 유도하고 나섰지만, 대학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등록금 동결이 올해까지 이어질 경우 3년째 동결이 된다. 학생 감소와 함께 재정 압박을 호소하는 일부 사립대와 소형, 지방 학교들의 반발이 클 것이라는 평가다.
방통위가 마련한 통신비 인하 대책 역시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 수(작년 말 기준 5032만명)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스마트폰 가입자들에 집중돼 있어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장 교수는 “정부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면서 “당장은 물가 잡기가 어렵다고 국민에게 솔직히 설명하고, 장기적으로 지나친 대외 개방의 정도를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