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건설업계의 화두였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을 둘러싼 삼성물산과 코레일의 갈등은 국제회계기준(IFRS)의 도입에서 비롯됐다. 삼성물산이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대한 지급 보증을 거부하고 나서면서 사업이 좌초 위기에 처했던 것. 삼성물산이 지급 보증을 거부한 속내는 IFRS 적용시 시행사에 대한 지급 보증이 곧 건설사의 부채로 계상돼 재무 구조를 크게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해외 수주에 사활을 건 건설사의 입장에서 재무 구조의 악화는 성장 동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삼성물산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 조선업체인 A사는 지난 2007년 사상 최대인 212억 달러 어치를 수주했다. 수주에 따른 선수금과 건조 기간 받은 중도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해 받은 이자만 1000억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2006년 말 386%에서 2008년 상반기 1396%로 수직 상승했다. 선수금 등의 회계 계정이 부채인데다 이 기간 환율까지 급등해 장부상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난 결과다. A사는 IFRS 도입시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재연, 해외 영업에 차질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신묘년 새해 한국에 IFRS 시대가 열린 가운데, IFRS가 유럽 재정 위기, 중국의 긴축 우려 등에 이어 우리 경제의 새 혼란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된 IFRS가 오히려 조선ㆍ건설 업계등엔 새로운 저평가 요인으로 부각되는등 회계쇼크를 불러올 수있기 때문이다.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기준이 적용되고있는 데도 정부가 제도 도입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와 충분한 협의를 통한 원칙 정리없이 시행한 데 따른 부작용이 드러나고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물론 민간까지 참여한 범정부적인 대응을 통해 IFRS를 이미 시행만 만큼 연착륙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IFRS 도입으로 10대 건설사의 부채비율은 올해 평균 150% 포인트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사업 비중이 높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를 많이 하는 건설사는 부채비율이 최고 10배까지 높아지는 등 재무건전성 지표의 악화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이같은 부채비율 상승은 IFRS 상에서 시행사는 연결 재무제표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IFRS 적용 시 아파트 자체 분양 공사 수익은 입주 전까지 분양 선수금으로 잡혀 부채 비율이 더욱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계도 IFRS 도입이 득보다 독이 될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IFRS 적용으로 선박 수주부터 인도 시점까지의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환산 회계 시 부채 비율 급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이 자국내 관행과의 불합치를 이유로 IFRS 도입을 미루며 신중히 접근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논리에 휘말려 실속 보다는 당장의 도입에 급급하다 보니 발에 맞지 않은 구두를 신어야 하는 것처럼 편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설ㆍ조선업계의 이런 현실을 반영한 IFRS의 개정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국내 조선사들이 제시한 대안에 대해 IFRS 제정 기구인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업계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IASB 측의 입장이다.당분간 재무제표 이용자들의 혼선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장희종 대우증권 연구원은 “오는 5월 첫 IFRS 적용 재무제표가 나올 때까지 건설ㆍ조선 업체들에 대한 실적 전망치는 변동성이 클 것으로 보여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서정우 한국회계기준원장은 “앞으로 IFRS의 개정 작업에 국내 업계의 요구가 충분히 수용될 수 있도록 민관 공동의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반=김영화ㆍ정순식ㆍ하남현 기자/betty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