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여인과 불같은 사랑
치료위한 사투 끝에
결국 이별을 고하지만…
제이미(제이크 질렌할 분)는 젊고 야심만만한 영업사원이다. 카사노바 같은 타고난 화술과 ‘바람기’가 무기다. 북극에서 냉장고를 팔고, 아프리카에서 히터를 팔 기세다. 동료 여사원과의 근무 중 불장난으로 인해 가전제품 판매점에서 해고당한 그는 제약회사 ‘화이자’에 다시 취직해 병원을 상대로 한 영업전선에 나선다. 의사들에게 로비를 펼쳐 우울증 치료제 매출을 올리는 것이 주업무이고, 병원에 드나들기 위해 데스크 여직원을 하룻밤 잠자리로 유혹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일상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병원을 들락날락하다 만난 한 여인이다.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매기(앤 해서웨이 분). 적극적으로 ‘작업’을 걸어오는 제이미에게 매기는 ‘하룻밤’을 허락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사랑 금지’. 연애는 노, 섹스는 ‘OK’다. 자신의 병 때문에 언젠가는 상대가 떠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매기는 상처받기 싫은 것이다. 자유분방한 삶을 맘껏 누리고 싶고, 성공을 목표로 야심만만한 제이미에게도 나쁠 것이 없다. ‘자유연애주의자’인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물론 여기서 끝나면 할리우드 로맨스영화가 아니다. 이제부터 누구나 쉽게 짐작하는 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만나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긴다. 헤어지면 그리워지고, 만나면 떠나기 싫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고, 상대의 사연을 듣고 싶다. 오로지 육체적 즐거움을 위해 만났던 가벼운 관계가 진지해진다.
발길 닿는 대로, 옷깃 스치는 대로 여인을 낚으며 살아왔던 제이미가 매기를 운명의 여인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처음 보여준 것은 매기의 병을 고치려는 노력이다. 때마침 자신이 다니는 제약회사 ‘화이자’는 남성용 성기능 치료제 비아그라를 내놓고 프로모션을 시작하려던 참. 폭발적인 매출 신장이 불 보듯 뻔한 이 제품이 제이미의 소관으로 떨어지고, 그의 실적은 나날이 높아만 간다. 의사들조차 ‘개인용’으로 이 약을 찾는 상황이 오고, 제이미는 의사들의 뒤를 봐주며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과 전문가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난치병인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멀어만 보이고, 제이미에게 끌려다니다 지친 매기는 마침내 결별을 선언한다.
이 영화를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영화나 불치병 멜로의 뻔하디뻔한 공식으로부터 구원해내는 것은 제약회사의 실명을 등장시켜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펼쳐지는 ‘영업’의 이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목소리를 높인 비난은 아니라고 해도 제약회사와 병원 간에 이뤄지는 ‘은밀한 거래’를 살짝 풍자하거나 비꼬면서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여기에 더해 앤 해서웨이와 파격적인 베드 신이나 노출 신을 곁들여 ‘성인용 로맨스영화’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국내엔 톰 크루즈 주연 ‘라스트 사무라이’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제이미 레이드의 논픽션 ‘강매: 비아그라 세일즈맨의 영업’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했다. 미국 제약업계의 이면을 들추는 책 내용을 로맨스영화로 스크린에 옮긴 것이 흥미롭다.
제이크 질렌할과 앤 해서웨이는 보여주는 섹시한 매력과 미묘한 심리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20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