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는 연말연시, 상상할 수 있을까? 노곤한 우리들의 삶과 늘 함께 하는 술. 이 술에 대하여 철학하게 하는 책이 나왔다. <음주사유>(2010, Page One)다. 이 책은 술에 대한 세 가지 사유를 얘기한다. 첫 번째는 사유(思惟), ‘음주에 대해 두루 생각함’이다. 두 번째는 사유(事由), 즉 ‘술을 왜 마시는가?’에 대하여이며, 세 번째는 사유(私有), ‘술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듦’을 말한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대단한 애주가, 1974년생 두 남녀(김은하, 박기원)의 술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도드라지게 눈길이 가는 부분은 다양한 인용문구다. 페이지마다 적당히 오려 붙여진 인용저서들의 문구들을 읽다보면 술과 함께 하는 철학 산책이 절로 된다. 이 책에서 인용하는 저서들은 꼭 다시 읽거나, 구입해 읽어보고 싶은 책(고전)들이라 소개해 보고 싶다.
“빌헬름 라이히의 ‘그리스도의 살해’, 앙리 드 몽테를랑의 ‘미셀 투르니에의 외면일기’,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김영민의 ‘사랑의 물매’, 애드거 앨런 포의 ‘심술궂은 어린 악마’,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1’의 '보들레르 J 16A, 10',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파리의 우울’, 존 버거의 ‘A가 X에게’, 신현준의 ‘이매진 세상으로 만든 노래’, 이상의 ‘날개’, 함민복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 이백의 ‘청계주인집에 묵으며 ’. ”
노래가사도 종종 인용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노래들을 따라 들으면 왠지 술맛이 좋아질 것 같다.
“김광석의 ‘나른한 오후’, 배리 매닐로우의 재즈 콘셉트 앨범 '2AM Paradise cafe', 밴드 램찹의 대표 앨범 'How I Quit Smoking'의 수록곡, 메리 홉킨 'Those were the days', 바비킴의 '사랑할 수 있을 때', Pink의 'So what'. "
두 남녀 작가는 총4부, 67개의 술 이야기를 380페이지에 걸쳐 들려준다. 읽다보면 도대체 왜 그렇게 술을 마셔대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작가는 술자리에 어린왕자까지 데려오는데 그 자리에서 연유를 엿들을 수 있다.
“어린왕자 : 술은 왜 마시나요? 아저씨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나요? (중략) 그럼 왜 이 쓴 걸 자꾸 들이키나요? / 나 : (고개를 푹 숙이며) 외롭기도 하고 자유로워지고 싶기도 해서. / 어린왕자 : 왜 외로운 거죠? 자유롭고 싶다면서요? / 나 :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하니까. (중략) 어느 순간 막상 내 자신을 대하려고 하면 두려워져. (중략) 적나라한 나를 피하려는 각자의 나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거야. ” P99~101
존 스튜어트 밀은 “도덕이론의 바탕이 되는 삶의 이론인 쾌락 추구와 고통에서의 해방이 유일하게 바람직한 목표”라고 확신했다. 외로움과 두려움이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술이란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긴 하다. 부작용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북데일리 제공]